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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야기

소나무 뿌리를 캐내라

by 강창석 on Jul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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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어령
원제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40> 대동아의 신화 ④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ID=3627022
htm_20090529021026a000a010-001.jpg동방의 아시아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 것은 총칼의 힘도 물질의 풍요도 아니었다. 눈서리 차가운 추위를 이기는 미학이요, 그 우정이다. 세한삼우(歲寒三友)의 하나인 소나무가 바로 그러한 일을 했다. 추위 속에서 따뜻한 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소나무지만 그 추위의 특성이나 차이에 따라 중국의 송(松), 한국의 솔, 그리고 일본의 마쓰(まつ)가 제각기 다르다.

무엇보다 소나무와 한국인의 관계가 그렇다. 소나무를 보면 울음이 나온다고 쓴 적이 있지만 소나무만큼 한국인을 닮은 나무도 이 세상에 없다. 태어날 때는 솔잎을 매단 금줄을 띄우고 죽을 때에는 소나무의 칠성판에 눕는 것이 한국인의 일생이다. 하지만 그 쓰임새보다도 소나무의 생태와 형상 그 자체가 한국인에 더욱 가깝다. 풍상에 시달릴수록 그 수형은 아름다워지고 척박한 땅일수록 그 높고 푸른 기상을 보여준다.

기암창송(奇巖蒼松)이니 백사청송(白沙靑松)이니 하는 말 그대로 다른 식물들이 살지 못하는 바위와 모래땅에서 소나무는 자란다. 삭풍 속에서 모든 나무가 떨고 있을 때 소나무만은 거문고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옛 시인들은 ‘송뢰(松籟)’요, ‘송운(松韻)’이라 불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기억 속의 소나무는 거문고 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비명과 비행기의 폭음 소리를 냈다. 비행기 연료가 되는 쇼콩유(松根油)를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 뿌리를 캐 오라는 동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200그루 소나무면 비행기는 한 시간 난다”는 구호 속에서 아이들은 책을 덮고 송진을 따러, 소나무 뿌리를 캐러 산으로 갔다.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에 오르는 시시포스의 노동보다 더 무익하고 힘든 노동이었다. 그래도 시시포스의 노동은 산정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에는 빈손이 아니었는가. 그때가 더 괴로운 시간이라고 말한 소설가 카뮈는 솔뿌리를 캐는 노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다. 소나무 뿌리는 시시포스의 바위만큼 무겁다. 그것을 캐내는 어려운 작업이 끝나면 이제는 휴식이 아니라 그 무거운 바위 솔뿌리를 안고 내려가는 가혹한 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고 시를 읊던 풍류객들을 위해 술 심부름을 하던 동자(童子)들은 지금 ‘대동아공영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 노송의 밑뿌리를 캐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멀리에서 라디오로 청취하고 있던 미 제20항공대는 시저의 승첩문처럼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Dig and Steam and Send(캐내라, 쪄내라, 보내라).” ‘일본에 있어 솔뿌리는 석유의 귀중한 대체연료지만 그것을 캐고 가공해 기름으로 만들기까지는 그 불행한 나라의 대중을 더욱 분발시키기 위한 계획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에너지 기획이라는 것이었다. 전후에 미군이 계산한 것을 보면 솔뿌리 기름(쇼콩유) 1.5L를 생산하려면 한 사람이 온종일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기획량대로 기름을 얻고자 할 때 일인당 약 2000kL의 조유(粗油)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하루에 125만 명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시 증류 가마로는 한 번에 300㎏ 정도의 솔뿌리를 처리하는 데 하루를 소요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약 3만7000개의 증류 가마는 하루에 약 1만t의 소나무 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소나무 뿌리 매장량은 770만t 정도였으므로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일본 전국의 소나무는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캐내야 한다. 산에서 소나무가 전멸한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일본해국연료사』에는 “20만kL”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정제된 송근유를 완성한 것은 1945년 5월 14일에 도쿠야마에서 처음 생산한 500kL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어떤 공식 기록에도 쇼콩유를 사용한 비행기는 나오지 않는다. 미군이 진주하여 그 기름을 지프에 넣고 시험운전을 한 결과 며칠 뒤에 엔진이 망가져 못 쓰게 되었다는 거다.

어떻게 이런 만화 같은 계획이 일본인·한국인 모두의 힘을 빼고 바보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닫힌 사회에서는 언제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사람을 들볶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윗사람으로 앉아 있다는 점이다. 그 전형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 육군이 제시한 병사의 값은 2전5리로 당시의 엽서 한 장 값이었고 소총이나 군마를 구입하는 데는 약 500엔으로 인명의 2만 배에 해당했다. 이런 계산법에서 나온 것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동원할 수 있는 후방의 노동력이었으며, 그 안에는 잠자리나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의 젖 먹은 힘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북아시아를 하나로 만든 것이 세한삼우의 ‘소나무’였다면 그 아시아를 산산조각 낸 것은 소나무 뿌리를 캐낸 대동아전쟁이었다. 우리는 우리 땅을 지키지 못했기에 이 땅에 뿌리박은 소나무도 지킬 수 없었다. 소나무야, 세한삼우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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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28]강창석 2009.07.10 10:20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일컬으며 사군자(매난국죽)와 더불어 문인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다. 사군자가 계절별 순서로 이루어진 반면 세한삼우는 겨울과 관련된 식물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세밑 추위를 꿋꿋이 이겨낸 세한삼우는 어려움에도 지조와 절개를 바꾸지 않는 곧은 절개의 선비정신으로 상징되어 왔으며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림에서는 세가지를 함께 그린 것을 삼우도 또는 三淸圖라고 하며 두 가지를 바위와 더불어 그리는 몇 가지 조합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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