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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8. 소 잃은 외양간 SHELL로 고친다

by 강창석 on Nov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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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어령
cbw_3.jpg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와 문명은 거의 모두가 소 잃고 난 뒤에 고친 외양간들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같은 뜻의 속담을 두고 생각해보면 금세 납득이 갈 것이다. 페니실린은 플레밍 박사가 군의관으로 있을 때 수많은 병사가 총상의 염증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연구해 낸 대표적인 사후약방문이었다. 지금도 항생제란 날로 내성이 강해지는 균으로 계속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다.

수백, 수천 번 전복하고 충돌하여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 자동차의 안전띠이고 에어백이다. 볼보는 아예 사고현장에 달려가 원인과 결함을 캐내어 외양간 고치는 일을 제도화한 회사로 유명해진 자동차 회사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란 것도 사기꾼이나 도둑에게 소 잃고, 강도에게 목숨을 잃고 난 뒤에 고친 외양간이며 처방한 약방문이다. 정보시대를 만든 IT 혁명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 칼럼을 통해 지적한 '시루떡 나누기'(2회), 정보 미디어 '젓가락질의 RT 문화'(3회), '좌우지간'의 자전거 타기(6회) 같은 문화들이야말로 정보시대에 잃은 우리의 힘센 황소 뿔이 아니겠는가. 새 외양간을 만들어 다시 황소의 생명력을 들이지 않으면 희망의 디지털은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같은 변종 바이러스가 되고 행복의 인터넷은 암세포로 돌변할 수도 있다. IT의 고황(膏)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기우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꼭 나침반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폭풍까지도 막아주는 줄로 과신하고 항해하다가 목숨을 잃은 수부들 생각과 같은 소리다. 시뮬레이션 기술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어떤 상황이나 시스템 동작을 그와 비슷한 모델로 대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의학용어로는 꾀병, 물건의 경우에는 모조품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안전제일과 초 단위의 정확한 운행으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JR이 어떻게 해서 지난해 4월 25일 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아마가사키(尼崎) 열차 탈선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일으켰는가. 가장 큰 사고원인으로 운전미숙을 든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자동 열차정지 장치(ATS) 같은 기술에 의존한 현장 감각, 체감 제로의 피부 감각 없는 기관사 양성이 그러한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운전대를 꽉 잡고 죽은 나이 23세의 다카미(高見) 기관사는 쇠망치로 열차바퀴를 두드리고 다니던 옛날 노 철도원이 아니라 정보시대의 쌩쌩한 첨단을 달리는 노매딕 키드였던 것이다.

남의 나라의 열차사고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시대의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상징적 사고다. 혹시 지금 우리는 컴퓨터의 가상현실 속에서 운전을 배운 젊은이들이 모는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이 아닐까. 뒤창에 병아리 그림을 붙이고 운전하는 초보운전자들은 신중성도 있고 애교도 있다. 그러나 현장감각 체감 제로의 기관사가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채 과신 속에서 천방지축 달리다가는 궤도를 잃은 청룡열차(5회)처럼 추락할지도 모른다. 키를 잃은 배, 지팡이를 잃은 양치기처럼 좌우 균형을 잃고 표류할 때(6회) 우리는 다행히도 "SHELL"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JR 서일본의 아마가사키 열차탈선 때도 그랬다.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외양간을 고치기 위해, 그 약방문을 쓰기 위해 "SHELL"이라고 외친다. 우는 애를 멈추게 하는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곶감처럼 컴퓨터도 도망가는 '조개'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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