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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대작(屠門大嚼)

by 강창석 on Jun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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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심경호
출처 http://www.edasan.org/bbs/board.php?bo_t...;wr_id=155

img17.jpg1. 선친의 별미, 수제비


일요일이 싫었고, 수제비가 싫었다.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선친께 별미로 뭘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으셨다. 선친은 늘 “수제비!”라 하셨고, 어머니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밀가루를 반죽하셨다. 평소 쌀밥과 고기를 실컷 드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루치 쌀과 잡곡을 줄이기 위해 그러셨다. 일제강점기에 산업이 없는 편모 밑에 자라시면서 아카시 꽃으로 허기를 채우셨다는 선친은, 우리 여섯 아이와 밥상을 마주하시고는 어쩌다 나온 달걀찜에 수저 한 번 대신 적이 없다. 다만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별난 음식이라도 장만하듯 수제비를 빚으셨고 선친은 만한전석의 요리를 시식하듯 수제비를 드셨다. 그야말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의 변형이었다.   


도문대작이란 고기집 앞을 지나면서 입을 크게 벌려 고기 씹는 시늉을 하면서 잠시 마음을 유쾌하게 갖는다는 뜻이다. 선친의 세대는 정말로 고기집 앞에서 입맛을 다셨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수제비를 고기처럼 진미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거늘 우리는 그 많은 고기집 앞에서 입맛을 다시지 못한다. 아니, 집 바깥을 나서면 어떤 그럴싸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유쾌하지가 않다. ‘죽음의 밥상’이란 책 제목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2. 허균의 별미 노트, 『도문대작』


도문대작이란 말은 열 말의 세상 재능 가운데 여덟 말을 차지했다고 평가받는 조식(曹植)의 글에 나온다. 저 조조의 아들로 태어나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을 조식이 뭐가 부족해서 고기집 앞에서 고기 씹는 시늉을 하였을까. 실은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내어 대장부의 즐거움을 말하다가 속어를 끌어온 것에 불과하다. 당시의 속어에 “사람들은 장안이 즐겁단 말을 듣고는 문을 나서서 서쪽으로 향하면서 웃고, 고기 맛 좋은 걸 알면 고기 집 문을 마주하여 고기 씹는 시늉을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 성어는 대개 선망한다는 뜻으로 쓰이거나 선망하기만 하고 얻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도문대작이란 말을 원래의 말 그대로 음식에 대한 선망이란 뜻으로 사용한 사람이 있다. 바로 허균(許筠)이다. 신해년(1611, 광해군3) 4월 21일, 날짜까지 박아서 서문을 쓴 뒤, 허균은 별미들의 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유배지에서 주린 배를 쥐고 밤을 새다가, 음식 리스트를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고기 한 점을 물듯 쾌감을 느껴보려 한 것이다.


허균은 선친이 생존해 계실 적에는 별미를 예물로 바치는 자가 많아 진귀한 음식을 고루 먹었다. 커서는 잘사는 집에 장가들어 산해진미를 맛보았다. 임진왜란 때는 강릉에 피해 있으면서 해산물을 골고루 먹었고, 벼슬길에 나선 뒤로는 남북으로 전전하면서 별미를 죄다 먹어보았다. 그러나 바닷가에 유배되자 쌀겨마저도 보기 어려웠다.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 들미나리가 고작이었고. 그것조차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먹어 본 일이 있는 산해진미들을 노트에 적고 가끔 눈을 주기로 하였다. 그 노트가 『도문대작』이다.


중국에서는 진(晉)나라 사람 하증(何曾)이 《평안공식단(平安公食單)》을, 당나라 사람 위거원(韋巨源)이 《소미연식단(燒尾宴食單)》을 저술하였다. 하증은 한 끼 식사에 1만 냥을 쓰면서도 늘 젓가락 댈 만한 음식이 없다고 푸념하였다고 한다. 위거원은 측천무후 때 좌복야를 지내고 봉작을 받은 귀족이다. 두 사람은 수만 가지 진미를 기록하였으나 눈만 현란하게 할 뿐이지 실상은 알 수 없다. 허균은 그렇게 비판하고, 우리나라는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이 높아 물산이 풍부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떡, 수산물, 새와 고기, 채소 종류를 아주 상세하고도, 무척이나 수다스럽게 열거하였다. 새와 고기 종류로는 웅장, 표태(표범의 태), 녹설(사슴의 혀), 녹미(사슴의 꼬리), 고치(꿩), 거위 등을 지방 특산물로 들었다. 돼지ㆍ노루ㆍ꿩ㆍ닭 등은 어디나 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글을 보면 당시 즐겨 먹었던 고기 종류를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목록에는 우리가 즐겨 먹어온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우육(牛肉), 쇠고기가 없다! 


3. 다산 시대의 고기 먹는 풍습


다산 정약용은 꽤나 미식가였던 듯하다. 젊은 날의 시에서 “달빛 아래 차를 끓여 중과 함께 맛을 보고, 흰 눈 속에 고기 구워 손님 함께 즐긴다오”라고 했다. 돼지고기인지 쇠고기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규장각에 있을 때의 흥성한 잔치를 묘사한 속에는 쇠고기가 나오지 않는다. 


   빨간 대추 송편은 꿀로 떡소 넣었고                  紅棗고團蜜作함

   푸른 우엉 잘게 썰어 감자와 함께 삶았다.           綠藕切細蔗俱烹

   은풍의 준시는 뽀얗게 서리 앉았고                   殷풍준시潑霜厚

   울산의 감복은 환하게 글자 비추네.                  蔚山甘鰒照字明

   멧돼지 배 가르고 곰 고기도 구웠고                  山猪割肪熊설炙

   넙치 포에다 고등어도 겸하였다.                       比目之석重脣鯖


강진 유배 시절에는 “돼지고기와 닭죽은, 호화스러워 둘을 같이 먹기는 어렵다[花猪與粥鷄,  豪侈邈難竝]”라고 하였으나, 해배된 뒤에는 겨울 날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 모습을 그린 그림에 제화시까지 남겼다. 「한방소육도(寒房燒肉圖)」라는 제목이다. 


   해진 갖옷 소매 걷고 화롯가에 다가앉아                     弊貂선袖進爐頭

   가난한 선비가 덩실덩실 자득한 때로세.                     寒士沾沾得意秋

   꾸륵꾸륵 소리 내니 누가 욕하지 않으랴                     慢作蚓鳴誰不罵

   성낸 듯 눈 튀어나와도 걱정할 건 없다오.                   怒如魚眼卽無愁


가난한 선비들이 어쩌다 화로에 고기를 구워먹는 광경인데, 꾸륵꾸륵 소리 내면서 고기 먹는 모습과 눈에 불을 켜고 고기를 집어 드는 모습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였다. 겨울 방안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하였으니, 젊은 날의 시에서 고기 먹는 계절을 겨울로 설정한 것과 같다. 무슨 고기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부친과 어른들의 술자리 광경을 묘사한 어느 시에서 다산은 ‘소 잡고 술 빚어 동분서주 북적대네’라 하고, ‘고기를 구워낸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다산의 시대에는 쇠고기를 구워 먹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다산은 앞서의 「한방소육도」에서 “예법 있는 곳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니, 이 풍습은 원래 사쓰마 주에서 시작되었네.”라고 하였다. 고기 구워먹는 풍습이 일본 사쓰마 즉 가고시마현에서 왔다고 본 것이다. 그 기원에 대해 지금 따질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소의 도살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병자호란 이후에 발생한 사회 문제 가운데 하나는 소가 전염병에 걸려 죽어나가, 사람이 쟁기를 대신 끌어야 하였던 일이다. 농민들은 그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귀족들은 그 김에 아예 소를 도살하여 먹었다. 그래서 지천 최명길은 소의 도살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뒤로 쇠고기를 별미로 여겨 도살해서 먹는 풍습이 차츰 늘어난 듯하다. 우리 음식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에 계면쩍기 만하다.      

  

4. ‘대작’은커녕 ‘죽음의 밥상’을 걱정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음식 타령만 한 것이 아니다. 먹을 걸 절약하지 않는 현달한 자들에게 부귀영화가 무상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음식 자체에 큰  관심을 둔 것 또한 사실이다. 허균은 말하였다.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더구나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된다. 선현들은 먹을 것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먹는 것만 탐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비난한 것이지, 어찌 먹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한 것이겠는가.” 먹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안전한 음식을 즐거운 심경으로 먹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의 바람이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가 수제비를 뜨시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입맛을 다신다. 그 때 수제비는 우리 밀로 만들었다. 그 수제비를 드시면서 선친은 행복해 하셨다. 하지만 나는 육림과 해착을 눈앞에 두고도 행복하지가 않다. ‘대작’을 하기는커녕, 식재료의 원산지를 의심한다. ‘죽음의 밥상’을 받은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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