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야기

우리 아버지들은 어디로 갔나

by 강창석 on May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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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어령
원제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21> 달래 마늘의 향기 ⑤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ID=3594356
htm_2009050403035610001010-001.jpg“애 아빠 어디 가셨대유 !” 어렸을 때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버지들은 지금 출타 중이시다. 충청도 사투리로 길게 늘어뜨린 여인네들의 이 말의 여운 속에는 동정과 원망과 자탄과 그리고 회한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와 같은 미당의 ‘자화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 사내와 시국을 원망하며 아낙네들이 모여 울고 짜는 일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정 많은 마을, 한(恨) 공동체의 일상적 라이브 쇼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역이 된 아기 엄마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며 “이루 말로는 다 못혀”라고 목메어 대사를 잇지 못하면 청중들은 “사람 사는 일 다 그런 겨. 우리라고 속 편해서 사는 거 아녀”라고 추임새를 보낸다. 그러는 사이 뒷마당의 앵두는 빨갛게 익어가고 맨드라미꽃은 닭 벼슬처럼 홰를 치며 피어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텅 빈 집에서 혼자서 큰다. 이런 때 부르는 노래가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넛마을 아저씨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이다. 아파트의 ‘빈 둥지 증후군’은 나귀 타고 다니던 꽤 먼 시절부터의 내력이었던 것 같다. 나귀를 타고 가는 거리면 결코 가까운 장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한 사흘 장 본다는 핑계로 집을 비울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어머니는 왜 이웃마을도 아닌 건넛마을로 그것도 아주머니·할머니댁이 아닌 아저씨댁으로 간 것일까. 이 대목이 수상해서인지 요즘 부르는 노랫말에는 ‘어머니’가 ‘할머니’로, ‘담배’가 ‘달래’로 바뀐 것 같다.

근거 없는 억측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빈집에서 어른들이 없는 사이에 담배와 고추를 먹고 맴맴하는 고통이다. 이러한 빈 둥지 현상은 식민지의 불행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같은 시기의 일본의 동요 ‘금붕어를 죽이는 아이’의 노래는 그보다 몇 배나 잔인하고 어둡다.

“엄마야 엄마야 어디로 갔나/빨간 금붕어하고 놀아야지 / 엄마는 왜 안 오나 쓸쓸하구나 /금붕어 한 마리를 찔러 죽인다.” 엄마를 기다리다 쓸쓸하고 화나고 배가 고파 아이는 한 마리 두 마리 금붕어를 죽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맴맴이 아니라 뻔득뻔득이라고 외친다. “눈물이 진다 / 해가 진다/ 빨간 금붕어도 죽고 죽는다// 엄마 나 무서워/눈이 뻔득여 /뻔득뻔득 금붕어의 눈이 뻔득여 ”

하지만 빈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며 고추 먹고 우는 아이, 금붕어를 죽이며 공포에 떠는 아이는 예외다. 문제는 “아빠야 아빠야 어디로 갔나”라고 찾는 애들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현상이다. 인간의 가정에는 동물사회에는 볼 수 없는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자의 지아비 ‘부(父)’는 두 손에 도끼(斧)를 들고 있는 현상을 본 뜬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술 마시고 놀음하고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처럼 허황한 꿈을 따라 떠도는 사람들의 손에는 도끼가 없다. 한자의 경우만이 아니라 영어로 읽어도 역사는 남자들의 것이다. 역사를 뜻하는 영어의 ‘History’를 파자(破字) 하면 ‘His Story’가 된다. 그래서 여성사학자들은 ‘Herstory’라고 적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한 나라의 역사가 남성들의 도끼(전쟁무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것처럼 개인 가족사인 my story도 아버지의 도끼에 의해 좌우된다.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우리 아버지들이 도끼를 잃었다는 뜻이다. 구석기의 수렵채집 시대부터 사용해 오던 돌도끼, 그 부권을 잃은 히스토리요, 마이스토리다.

외갓집이든 달래를 캐는 들판이든 아이들이 부르는 “엄마야 누나야”의 모성공간은 수많은 역사의 높은 파도에도 한국 아이들의 정체성을 붙잡는 든든한 닻이었지만, 부성공간(父性空間)의 도낏자루는 부러지고 녹슬고 이가 빠져 더는 휘두를 수 없게 된 것이다. 1939년 내 나이 일곱 살, 2차대전이 일어나고 중일 전면전으로 일손이 부족했던 일본은 국민 징용령을 공포한다. 조선인 강제 동원의 징용으로 우리 아버지들이 일본 탄광으로, 공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들은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애 아빠 어디 가셨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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