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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야기

동요가 아니다, 군가를 불러라

by 강창석 on Jun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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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어령
원제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33> 아버지의 이름으로 ②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ID=3614548
htm_20090520024456a000a010-001.jpg자장가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문자와 말을 알기 전에 벌써 노랫소리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말더듬이도 노래를 부를 때만은 신기하게도 말을 더듬지 않는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베네딕트 앤더슨은 근대의 내셔널리즘이 ‘출판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말을 문자로 옮긴 것과 그것을 노래에 담은 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 보기 드물게 군가를 대량생산해 그것으로 지배의 도구를 삼은 일본군국주의 밑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에서 ‘젊은 독수리(소년 항공 예비훈련병)’까지 『그리운 군가집』에 200곡이 넘는 군가(軍歌)를 출판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지상에 일본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글자대로 읽으면 군가는 행진곡처럼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제이국민’과 ‘소국민’들의 일반사람들에게 전투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셔널리즘의 ‘소리 텍스트’다. “빵을 달라는 아이에게 누가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누가 뱀을 줄 것이냐”는 성서의 말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꽃을 달라는 아이에게 총을 주고, 사랑의 동요를 들려달라는 아이에게 죽음의 군가를 가르쳐 준 것이다.

군가의 어느 한 대목 치고 ‘죽음’을 노래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군가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기미가요’ 국가(國歌)보다 더 많이 부른 ‘우미유카바(海ゆかば·바다에 가면)’였다. “바다에 가면 물먹은 시체가 되고 산에 가면 잡초에 덮인 시체가 되리라. 님(大君·천황) 곁에서 죽으니 무슨 아쉬움이 있으랴….” 바다와 산은 전쟁터의 주검(屍)이요, 묘지라는 이야기다. 천황은 우리를 황국신민으로 낳아주신 아버지요, 우리는 그 생명을 주신 천황의 ‘아카고(赤子·갓난아이)’다. 그러니 천황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곧 효의 길이요, 충의 길이다. 이것이 열 살배기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논리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천 년 가까이 우리는 충효의 사상 속에서 살아왔다. 그 대상을 일본의 천황으로 바꾸려 한 것이 식민지 아이들이 아침· 저녁으로 부른 동요 아닌 군가였다.

천황제 군민국가가 생긴 지는 불과 100년도 채 안 되었는데도 마치 그러한 천황 숭배와 황국사상은 태고적부터 있어 온 것처럼 허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우미유카바’의 가사 역시 1300년 전으로 올라가 『만엽집』(萬葉集4094番 大伴家持)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만엽집』이란 이름부터가 그렇듯 글자는 왕인(王仁)이 갖다 준 이두식 한자요, 말은 소위 도래인들이 주류를 이룬 한국말과 깊은 연관을 지닌 혼합체들이다. 거기에 가사 내용은 임을 떠내보낸 한 여인이 “아침 바닷가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시거든 님이여 그대 그리워 한숨짓는 내 입김으로 아옵소서”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임을 천황으로, 바다 위의 안개를 물먹은 시체로 그 이미지를 바꿔놓은 것이 ‘우미유카바’다. 작곡자 자신(信時潔)이 기독교의 찬송가를 듣고 자란 독일 고전음악의 애호가로 학도병 출정 때 자신의 곡이 불리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자장가는 어머니가 부르고, 군가는 아버지가 부른다. 어머니는 평화로운 잠 속에서 생명을 노래 부르고,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노래가 진짜 우리 아버지들의 노래가 아니다. ‘근대화는 부권의 상실과 함께 시작했다’고 말하는 정치사회학자들의 지적대로 우리의 아버지들은 거세되고 추방됐다. 단지 실체 아닌 허구의 ‘무서운 아버지’가 부권을 부활시키려 우리에게 군가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깃발을 나부끼고 군가를 부르며 어린 가슴으로 다가오는 ‘무서운 아버지’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문서에 기록된 문자에만 의지하는 버릇이 있어서 히노마루(일장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군가였다는 것을 잘 모른다. 식민지 아이들이 불렀던 ‘소리의 텍스트’에 대해서는 한낱 문맹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깃발은 눈으로 보고 노래는 귀로 듣는다. 눈은 앞에 있는 것을 보지만 소리는 앞에서도 오고 뒤에서도 온다. 전 방향에서 우리를 에워싼다.

그러나 식민지 아이들은 천황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냥 군가만 불렀는가. 아니다. 일본 군대의 나팔소리에 이상한 가사를 붙여 노래 불렀다. “야마네코가 보쿠노 긴타마 돗데 있다. 이스고로가 반노 쥬니지고로다요.” 이 가사의 뜻이 무엇인지 70대 중반의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보라. 할아버지는 멋쩍게, 그러나 조금은 통쾌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선뜻 대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만 알거라. ‘야마네코’는 살쾡이고. ‘보쿠’는 나, 그리고 ‘긴타마’는 남자의 소중한 그 불의 상징물이지. 그래, 그것을 밤 열두 시에 살쾡이 녀석들이 떼어갔다는구나. 생각해 보라. 야마네코의 살쾡이가 누구였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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