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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어제와 오늘

by 강창석 on Nov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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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현산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ode=990100

l_2014110801001018400079292.jpg 우리 세대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처음 대학 강단에 설 때, 선배 교수들은 3년에 논문 한 편씩을 쓰면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해는 주제를 설정하여 자료를 모으고, 한 해는 논문을 구상하여 얼개를 짜고, 마지막 해는 논문을 집필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매우 넉넉했을 것 같지만 그때에도 논문 쓰는 사람들은 크게 압박을 받았다. 진지한 연구자들은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에 자신의 미래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이 넉넉한 시간을 용서하지 않았다.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교수들에게 1년에 최소한 논문 한 편씩을 쓰라고 독려했다. 특히 IMF 사태 이후에는 ‘교수 철밥통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존경 받는 교수 같은 것이 없어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내가 아는 인문학 분야에서만 말한다면 교수들은 지금 내가 처음 교수생활을 할 때보다 10배 정도 논문을 더 쓴다. 그래서 인문학이 그만큼 발전했는가. 양적으로는 그렇다. 다만 이런 말을 덧붙여 둘 필요가 있다. 옛날에는 연구자들이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열심히 읽었으며, 누가 어떤 논문을 썼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 논문을 읽는 사람은 쓴 사람 자신과 두세 명의 심사자뿐이라는 말도 있다.

옛날에는 어떤 분야에서 교수가 대학원생의 논문을 가로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인문학 분야의 교수들은 그 상황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학원생들이 내 시간을 빼앗지만 않아도 다행일 텐데.” 내 주변의 연구자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식의 양에서건, 사실의 해석에서건, 표현 역량에서건, 선생과 학생의 격차는 매우 커서 교수가 학생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이야기다. BK나 HK 프로젝트가 생겨난 이후 이 상황은 달라졌다. 다량의 논문을 생산해야 하는 이들 프로젝트에서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의 보고서 수준의 논문에 교수들이 자기 이름을 얹는 일이 이제는 비일비재하다. 논문의 주제를 정하고 써야 할 방향을 지시한 것이 교수이기도 하니 따지고 보면 딱히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논문의 질은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준화되었다.

이 심사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논문을 쫓기면서 써야 하는 편수 늘리기 체제에서는 논문을 심사 받는 사람과 심사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처지에 몰려 있다. 그들은 심사에 엄격하기 어렵다. 질이 평준화된 상태에서 좋은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을 가리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학술지가 ‘괜찮은’ 학술지로 인정받고 연구재단의 검열에 대비하려면 투고된 논문 가운데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의 논문은 떨어뜨려야 하니 희생양을 찾게 되고, 그 일이 만만치 않으면 편법을 쓰게 된다. 투고된 논문의 일부를 짐짓 떨어뜨리는 척했다가 다음호에 게재하거나, 실체가 없는 명목상의 논문을 만들어 탈락률을 높이는 일도 그런 편법에 속한다.

교수들을 압박하면서 인문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 가운데는 영어 강의나 영어 논문 쓰기도 들어간다. 한 학문분야에서 고급한 내용을 지닌 첨단적 사고는 이미 국제어가 된 영어로 집필되어 그 학문의 새로운 길을 세계적 수준에서 향도함이 바람직한 일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라면, 그 첨단적 사고는 제 나라 말로 강의하고 제 나라 말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만 돌출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의 깊이란 의식적인 말이건 무의식적인 말이건 결국 말의 깊이인데, 한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그 존재의 가장 내밀한 자리와 연결된 말에서만 그 깊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문이, 특히 인문학이 제 나라 말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떤 언어로 표현된 생각은, 그 생각이 어떤 것이건, 그 언어의 질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세상을 바꾼다. 정의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제도가 달라졌을 터인데, 정의를 ‘저스티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를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온갖 역사적 노력과 그 말을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문에서 제 나라 말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제 삶과 역사를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읽을거리 이어령 선생의 디지로그 칼럼과 한국인이야기 그리고 다른 분들의 칼럼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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