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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디지로그<디지털 + 아날로그> 시대가 온다

by 강창석 on Nov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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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어령
출처 http://bit.ly/rrrkUw
(* 이 글을 비롯한 디지로그 시리즈는 이어령 교수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칼럼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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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디지로그' 세계를 향해…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대학생이 된 천재소년 송유근(9·왼쪽)군이 휴보로봇과 손잡고 아인슈타인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서울과학관의 시간터널을 지나고 있다. 전시회는 2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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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혜경
디지털 기술로 절대 채울 수 없는 것은 설날의 떡국 맛이다.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겨울 연가'의 영상미로 물꼬를 튼 한류에 '대장금'의 음식문화가 결정타를 '먹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묻는 환자에게 "나이만 먹지 말고 다 먹어라"고 했다는 어느 의사의 이야기는 한국인만이 웃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시간을 상징하는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매년 설이 되면 자식까지 삼켜버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크로노스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이나 시간만이 아니다. 마음도 먹는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인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돈도 떼어먹고 욕도 얻어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전 세계가 한점 잃었다(로스트)고 하는 축구경기에서도 우리 '붉은 악마'는 한 골 먹었다고 한다. 모든 층위에서 먹는다는 말은 유효하다. 심리적으로는 겁을 먹고 애를 먹는다. 소통 행위에서는 "말이 먹힌다" "안 먹힌다"고 하고 경제 면에서는 경비를 먹거나 먹혔다고 한다. 심지어 성애의 차원에서는 따먹었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어찌 그것이 자랑일 수 있겠는가. 먹는다는 말이 이처럼 다원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네그로폰테처럼 "빙 디지털!" "이제는 디지털이다"라고 외치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분명히 먹는 걱정을 하던 시대는 갔다. 지금은 대통령도 인터넷 댓글로 정치를 하는 희한한 정보시대가 아닌가.

오늘 아침에도 누리꾼들은 밥상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아 새해 인사를 나누었을 것이다. MP3의 디지털 음악으로 해피 뉴 이어의 노래를 듣고 신데렐라 마차 같은 팬시한 연하장을 e-메일로 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화상 채팅으로 얼굴을 맞대고 실시간 대화를 즐겼을 것이다.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가상현실(VR)의 삼차원 공간에서는 센서 글러브를 끼고 보조장치만 갖추면 실제 현실 그대로 보고 듣고 만지기도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냄새까지 맡는 향기통신의 웹 사이트도 생겼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설날의 떡국 맛이다. 모든 감각을 모두 디지털화해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

그러기에 애플 컴퓨터의 로고는 입으로 반쯤 저며 먹은 모양을 하고 있고 실리콘 밸리의 마돈나 킴 폴리제는 인터넷 쌍방향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그 이름을 커피 브랜드인 '자바'에서 따다 붙였다. PC방을 인터넷 카페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두가 먹을 수 없는 디지털 미디어에 미각 이미지를 보완하려는 고육지책의 산물이다.

정보사회에서 '미각'은 디지털화할 수 없는 최후의 아날로그적 감각과 그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물적이나 경제적인 시각에서 보아왔던 식 문제를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정보 미디어로서 평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먹는 음식을 예부터 의식동원(醫食同源)으로 생각해 왔던 한국인에게는 선식(仙食)의 경우처럼 신선(神仙)의 종교적 의미까지 지니게 된다. '겨울 연가'의 영상미로 물꼬를 튼 한류에 '대장금'의 음식문화가 결정타를 '먹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의식동원의 전통이 한류 문화를 타고 문식동원(文食同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이 문화라는 것은 사과를 놓고 보면 안다. 근대 민주주의는 윌리엄 텔의 사과에서 나왔다고 하고, 근대의 과학은 뉴턴의 사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리고 트로이의 전쟁을 일으킨 아프로디테의 사과가 전쟁사의 시작이라면 스티브 잡스의 애플 컴퓨터의 사과는 PC 역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먹는 미각의 사과는 아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만으로는 사과와 나의 거리를 메울 수 없다. 오직 그것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에만 사과는 비로소 미각을 통해 통째로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와 사과는 한 몸이 된다. 미각의 힘, 씹는 그 힘은 밖에 존재하는 타자를 나와 하나가 되게 하는 유일한 융합의 힘이다. 동시에 그 대상을 파괴해야만 먹을 수 있는 공격성과 비극성도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 먹은 순간에서부터 시작된 길고 긴 인간의 외로운 역사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최후의 만찬은 먹는다는 것이 단순한 배부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수많은 말씀과 이적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어째서 마지막 메시지를 '먹는 것'으로 끝마무리했는가. 왜 그 흔한 한 조각의 빵을 자신의 육체라 하고 그 값싼 한 방울의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했는가. 십자가는 혼자 지고 가도 식사만은 홀로 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제자들은 지금까지 보고 듣고 냄새 맡던 그 메시지(정보)를 어금니로 깨물어 삼키는 법을 깨닫게 된다. 빵이 되고 술이 된 예수는 단절됐던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미디어로서 존재한다.

먹는 것의 일체감, 그리고 그 융합의 원리는 오늘날 '회사'를 의미하는 컴퍼니(company)란 말에서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컴'은 '함께'(共), '퍼니'는 '빵'이라는 뜻이다. 어원대로 하자면 컴퍼니는 일터이기에 앞서 함께 빵을 먹는 식탁이다. 운동권에서 잘 쓰는 캠페인이란 말과 혁명가들이 애용하는 컴패니언(동지)이란 말 모두는 같은 뜻을 지닌 파생어다. 그렇다. 우리는 벌써 그런 공동체 의식을 "한 솥의 밥을 먹는다"는 말로 절묘하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식(食)문화의 공동체가 사이버 문화의 디지털 공동체로 급속히 변해가는 것이 오늘의 정보사회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날로그 인간형과 디지털 인간형으로 분리되고, 그 생활은 비트와 아톰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양극화해 간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 이미 시인 T S 엘리엇은 정보시대의 상황을 이렇게 노래 불렀다.

"생활(living)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삶(life)은 어디에 있는가. 지혜(wisdom)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knowledge)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informaiton)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시 '바위'에 의하면 인간의 문명은 생명의 삶으로부터 끝없는 상실의 단계를 거쳐 오늘의 정보시대로 추락해 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의 디지털 세대들은 정보 속에서 생생한 삶과 지혜, 그리고 지식을 씹을 수 있는 어금니를 잃어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유가 아니라 디지털 세대들은 실제로 씹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 2000년 전 인간의 식사시간은 51분이고 씹는 횟수는 3990회로 추정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일본 초등학교 급식 조사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씹는 횟수는 700~500회로 7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음식만이 아니다. 정보시대의 아이들은 클릭 하나로 삶의 문제들을 씹지 않고 삼켜버린다.

디지털 혁명의 장밋빛이 조금씩 먹구름과 거품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양극화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새에 다리를 놓아주는 누군가의 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나이(시간)도 마음도 새로 먹는다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파워가 2006년 희망의 키워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디지로그의 뉴 파워가 무엇인지 성급하게 묻지 말고 이번만은 차분히 함께 검증해 보지 않겠는가. 줄기세포처럼 정말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나 있는 것인지 더 이상 기대가 실망이 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그야말로 큰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한다.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 profile
    [레벨:2]이미경 2006.12.28 13:02
    이어령 교수의 글은 오늘부터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인터넷 도서관이라고해서 다른 것을 생각하다가 이제서야 여기를 클릭했습니다.
  • profile
    [레벨:1]江川 2009.03.31 18:49

    이어령 선생님의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문장을 읽어본 후 디지털, 아날로그 및 디지로그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선, 디지로그란 무슨 뜻인가?

    이 문장에서 필자 이어령 선생님이 처음으로 디지로그란 용어를 사용하셨다.

    디지로그란 말은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디지로그란 말은 디지털 및 아날로그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게 된다.

    그럼,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무엇인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휴대폰, 콤팩트 디스크 등이 모두 디지털 방식이다. 디지털휴대폰은 아날로그 신호인 음성을 수십만 개의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으로 CDMA라는 방식이 사용된다.

    소리, , 전기 등의 파장을 갖는 것들을 우리는 디지털 방식과 비교하여 아날로그 방식이라고 부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 점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연필 한 자루의 길이를 측정해보자.
    연필 그 자체의 길이가 아날로그이다. 정확한 길이가 얼마인지 눈, , , , 입 등 우리의 감각기능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디지털의 개념으로 측정한다면, 일반 자로 재면 10Cm, 버니어캘리퍼스로 재면 10.05Cm, 마이크로미터로 재면 10.01Cm 등 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연필의 정확한 길이를 알 수는 없지만 디지털로 측정할 때 좀 더 정밀하게 인식할 수는 있고 우리는 그것을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필자 이어령 선생님은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digilog)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다라고 한 바가 있다.

     

    필자가 우선 한국인들한테 아주 친숙한 음식문화의 예들로부터 아날로그의 구상을 언급하여 이어서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현실을 전개했다. “()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가 사이버 문화의 디지털 공동체로 급속히 변해가는 것이 오늘의 정보사회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날로그 인간형과 디지털 인간형으로 분리되고, 그 생활은 비트와 아톰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양극화해 간다. 오늘 아침에도 누리 꾼들은 밥상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아 새해 인사를 나누었을 것이다. MP3의 디지털 음악으로 해피 뉴이어의 노래를 듣고 신데렐라 마차 같은 팬시한 연하장을 e-메일로 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화상 채팅으로 얼굴을 맞대고 실시간 대화를 즐겼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도 인터넷 댓 글로 정치를 하는 희한한 정보시대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미 디지털화되는 현실에서 아날로그가 점점 잃고 멀어가고 있다. 필자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많은 아날로그 습관을 개조해내고 있지만 디지털은 그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라고 모든 감각을 모두 디지털화해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고 노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병존하는 이 현실사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고 했다.

     

    그럼 디지로그화 현실에 있는 과제가 무엇인가?

    지금 양극화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새에 다리를 놓아주는 누군가의 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디지로그의 뉴 파워가 무엇인지 성급하게 묻지 말고 이번만은 차분히 함께 검증해 보지 않겠는가. 줄기세포처럼 정말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나 있는 것인지 더 이상 기대가 실망이 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그야말로 큰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한다”(필자).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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