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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生存 競爭'의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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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宋 敏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00_3/10_8.htm

kth9.jpg 구한말 통감부(統監府) 시절에 간행된 일본어 회화 독본 가운데 하나인 정운복(鄭雲復)의 『독습 일어정칙』(獨習 日語正則, 皇城 廣學書  발행, 隆熙 원년, 1907)에는 다음과 같은 대역(對譯) 문장이 나타난다.

 

今ハ 生存競爭ノ時代デスカラ 何ノ事業デモ 一ツ見事ニ遣ツテ見マセウ
지금은 生存競爭時代이오니 무슨 事業이든지 한번보암즉이여보옵시다(第五章 人倫及人事, 60-61)

 

국어 쪽의 '생존 경쟁'은 일본어 문장에 나타나는 한자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결과여서, 이 복합어가 일본어에서 유래했음을 암시해 준다. '생존 경쟁'은 본래 '자연 도태(自然 淘汰), 적자 생존(適者 生存)'과 같은 학술 전문어로서 생물학적, 사회 과학적 진화론(進化論, evolution theory)에서 나온 말이다. 각기 struggle for existence, natural selection, 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한 번역어인데, 이들은 한 동안 학술 전문어로 활용되다가 점차 일반적 의미로도 전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사전』(1920)에는 '생존 경쟁'이란 복합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생존 경쟁'을 비롯한 '적자 생존, 자연 도태'와 같은 진화론 관계 신생 한자어는 총독부 사전 이후 오랜만에 간행된 문세영(文世榮)의 『조선어 사전』(朝鮮語 辭典, 1938)에 비로소 채록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큰 사전』(1947-57)에 이르면 '생존 경쟁'은 다음과 같은 풀이로 나타난다.

 

≪사회≫ 모든 생물이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남보다 먼저 생활 수단을 획득(獲得)하려는 노력. 이 결과로 생물 상호간에 경쟁이 생기어 적자(適者)는 생존(生存)하고 부적자(不適者)는 도태(淘汰)를 당함.

 

결국 '생존 경쟁'이라는 새로운 복합어는 1930년대 말,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에 처음으로 채록되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통감부 시대부터 국어에 수용된 신생 한자어로 해석된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진화론 관련의 전문어가 번역어로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은 鈴木修次(1981, 168-214) 'Ⅴ [진화론]의 일본 유입과 중국([進化論]の日本への流入と中國)'에 상세히 논의되어 있다. 여기서는 전적으로 이를 의지하되, 芝田稔(1969, 1972, 1974)도 아울러 참고하면서 '생존 경쟁'을 비롯한 진화론 관계 복합어의 출현과 정착 과정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일본에 다윈의 진화론을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1878년 동경대학 이학부 생물학과 동물학 교수로 취임한 미국인 모스(Edward Sylvester Morse, 1838-1925)였다고 한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동물 진화론]을 영어로 강술했는데, 당시 대학 예비문의 생도였던 石川千代松과 平沼淑郞은 노트를 번역하여 『動物進化論』(1883)이란 책을 펴냈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생물 진화론에 관한 저술이라고 한다.

 
   당시 동경대학 생물학과 식물학 교수 矢田部良吉가 쓴 이 책에 서언(緖言)에는 이미 '생존 경쟁, 적자 생존'이란 전문어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목차 제1회에는 '人爲淘汰, 自然淘汰ノ證說'이란 제목이 나타난다. '인위 도태'에는 アルチフシアルセレクション, '자연 도태'에는 ナチユラルセレクション이란 독법(讀法)이 달려 있어, 이들이 각기 artificial selection, natural selection에 해당하는 번역어였음을 알려 준다. 이로써 19세기 80년대 초엽에는 일본어에서 이미 '인위 도태, 자연 도태'라는 진화론의 핵심 용어가 '생존 경쟁, 적자 생존'과 함께 신생 번역어로서 활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앞서, 모스가 동경대학 교수로 취임한 해인 1878년 11월에는 矢田部良吉이 회장이었던 동경대학 생물학회 제1회 예회가 열렸는데, 여기에는 모스, 石川千代松도 참가하고 있었다. 이 때부터의 학회 활동을 통하여 생물 진화론의 열기가 급속하게 높아졌으리라고 짐작되지만, 진화론에 대한 일본 사회 일반의 관심은 다윈의 『종(種)의 기원』(Origin of Species, 1859)에서 논의된 생물 진화에 국한되었다기보다 인간 사회 일반에 적용되는 사회 과학적 다위니즘에 있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다.


   모스를 동경대학 생물학과 동물학 교수로 추천한 사람은 당시 동경대학 문학부 교수였던 철학자 外山正一(1848-1900)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회학자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주장을 통하여 진화론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미국의 동물학자인 모스의 이름도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스펜서는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공표하기 이전인 1852년부터 생물학적 진화에 관한 주장을 발표해 왔을 뿐 아니라, 진화의 일면을 나타내는 survival of the fittest(그 의미는 最適者 생존, 후에 적자 생존이라는 번역어로 굳어졌음)와 같은 말을 쓰기 시작한 사회학자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화론에 최초로 관심을 가졌던 일본인은 外山正一였다고 할 수도 있다.


   거기다가 인간 사회의 진화론 논쟁에 불을 당긴 것은 1881년 10월에 창간된 월간 학술 계몽지 『동양학예잡지』(東洋學藝雜誌)였다. 먼저 그 제1호와 제2호(11월)의 2회에 걸쳐서는 모스를 교수로 받아들인 동경대학 초대 총리 加藤弘之(1836-1916)가 '인위 도태에 의하여 인재를 얻는 기술을 논한다(人爲淘汰ニヨリテ人才ヲ得ルノ術ヲ論ズ)'는 논문을 집필하였고, 제3호(1882년 1월)부터 제6호(같은 해 3월)까지의 3회에 걸쳐서는 사설(社說)이란 형식으로 '자연 도태법 및 이를 인류에 적용한다면 어떨까를 논한다(自然淘汰及之ヲ人類ニ及ボシテハ如何ヲ論ズ)'는 논문을 게재하였다.

 
   이처럼 당시의 진화론을 사회학적 방향으로 이끈 사람은 加藤弘之였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다위니즘에 토대를 둔 『인권 신설』(人權新說, 1882)이란 저술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는 모스의 『동물 진화론』이 출판되기 1년 전이었으나, 여기에는 '생존 경쟁, 자연 도태(自然淘汰), 인위 도태(人爲淘汰)'와 같은 진화론 관계 용어가 모두 나타난다. 이들은 거의 加藤弘之 자신의 창안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생물학에서 출발한 진화론의 핵심 용어는 점차 사회과학, 철학 등에도 원용되었다. 井上哲次郞 등이 펴낸 『철학 자휘』(哲學字彙, 초판 1881)에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진화론 관계 용어가 포함되어 있다.


   Selection 選擇, 陶汰(生), Artificial selection 人爲陶汰, Natural selection 自然陶汰(초판 83-84)
   * 다만 이 때의 '陶汰'는 오늘날 표기로는 '淘汰'임
   Struggle 競爭, Struggle for existence 生存競爭(초판 87)
   Survival of the fittest 適種生存(生)(초판 88)


   '도태'와 '적종 생존'의 끝에 붙어있는 '생(生)'은 생물학 용어임을 나타낸다. 하여튼 진화론에서 유래한 이들 번역어는 이처럼 『철학 자휘』와 같은 사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의 초판에는 survival of the fittest가 '적종 생존'으로 나타나는 반면, 앞에 예시한 『동물 진화론』(1883)의 서언에서 矢田部良吉은 '적자 생존'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러나 '적종 생존'이라는 번역어는 『개정증보 철학 자휘』(1884)에까지 그대로 유지되다가 『영독불화(英獨佛和) 철학 자휘』(1912)에 이르러 '적자 생존'으로 수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일본어에 정착된 진화론의 핵심 용어는 그 후의 어느 시기에 국어에도 거의 그대로 차용되었는데, 정운복의 『독습 일어정칙』(1907)에 나타나는 '생존 경쟁'도 그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일본어라는 사실은 일본어 문장에 나타날 뿐 아니라, 이 책에는 또한 '우승 열패(優勝 劣敗)'라는 용례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現今ノ 世ノ中ハ 優勝劣敗デス
   只今世上은 優勝劣敗올시다(第五章 人倫及人事, 48)


   이 때의 '우승 열패' 역시 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한 또 하나의 번역어로서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앞에서 예시한 『철학 자휘』 초판(1881)에는 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한 번역어로서 '적종 생존' 밖에 나타나지 않으나, 개정 증보판(1884)에는 '적종 생존' 뒤에 '우승 열패'가 추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우승 열패'라는 용어는 加藤弘之의 『인권 신설』(1882)에도 나타나는데, 앞에 보인 『독습 일어정칙』의 일본어와 국어 문장에 동시에 나타나는 '우승 열패'는 이렇게 태어난 신생 복합어이며, 진화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말로서, 鈴木修次(1981)는 이를 加藤弘之의 조어(造語)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우승 열패'는 그 후의 『영독불화 철학 자휘』(1912)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처럼 진화론의 survival of the fittest에서 유래한 '적자 생존'이나 '우승 열패'라는 복합어는 일본어에서 비롯된 신생 한자어임이 분명하다. 정운복의 『독습 일어정칙』(1907)에 이 두 가지 번역어가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 또한 이들이 일본어에서 유래했음을 말해 준다. 그 후 '우승 열패'는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에도 채록되었으나 그 표기는 '우승 렬패'로 되어 있다.


   '생존 경쟁, 우승 열패'란 복합어가 일본어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19세기 말엽 중국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진화론 관계 번역어를 통해서도 역으로 확인된다. 중국에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일찍이 영국에 유학한 바 있는 엄복(嚴復, 1854-1921)이었다. 처음에는 다위니즘의 대표자로서 스펜서의 저술을 번역하려 했으나, 그 수가 많은 데다가 범위 또한 넓어 쉽게 번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스펜서의 저서 대신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 1893)를 택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번역된 헉슬리의 저술이 곧 『천연론』(天演論, 1898)이다. 이 때의 '천연론'은 일본어의 '진화론'에 해당하는 말이다. 엄복은 『천연론』을 간행한 이후에도 계속하여 스미스(Adam Smith). 스펜서, 밀(John Stuart Mill) 등의 경제학, 사회학, 법학, 논리학 관계 저술을 많이 번역해 낸 인물이다.

 
   요컨대 엄복은 evolution을 '천연(天演)'으로, struggle for existence를 '물경(物競)'으로, (natural) selection을 '천택(天擇)'으로, artificial selection을 '인택(人擇)'으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각기 일본어 '진화, 생존 경쟁, 자연 도태, 인위 도태'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정운복의 『독습 일어정칙』(1907)에 나타나는 '생존 경쟁'이나 '우승 열패'를 비롯하여,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1938)에 비로소 나타나는 '자연 도태, 적자 생존'에 이르기까지의 복합어들은 엄복의 번역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19세기 80년대 초엽 일본어에서 생성된 복합어로서 신생 번역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요컨대 현대 국어에 쓰이고 있는 '생존 경쟁, 자연 도태, 적자 생존(또는 '우승 열패')'과 같은 복합어는 어느 것이나 20세기 초엽을 전후하여 일본어에서 차용된 진화론 관계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참 고 문 헌

* 전번 호까지 이미 제시한 문헌은 생략함.
鈴木修次(1981), 『日本漢語と中國』, 中公新書 626, 동경 : 中央公論社.
芝田稔(1969), [日中同文譯語交流の史的硏究(1)], 『東西學術硏究所紀要』 2, 關西大學 東西學術硏究所.
______(1972), [日中同文譯語交流の史的硏究(2)]----嚴復の譯語について----, 『東西學術硏究所紀要』 5.
______(1974), [日中同文譯語交流の史的硏究(3)]----嚴復の譯語について----, 『東西學術硏究所紀要』 7.up.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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