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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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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기문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08_2/18_9.html
1.

Leekimun11.jpg  지난번에 고대 신라의 김대문(金大問)의 어원 연구를 논하면서 고유명사의 어원 연구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고유명사는 음상(音相)은 알고 있지만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유명사의 어원이 큰 호기심을 끌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밝히기 어려운 것일수록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 듯합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어원 연구의 대상이 된 ‘신라(新羅)’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신라’의 어원에 대한 연구는 국사학과 국어학 양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의 40년대 이래 이루어진 이 방면의 글들을 저는 대개 다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제가 깨달은 것은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어원의 불확실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신라’의 어원을 새로이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이 예를 통해서 고유명사의 어원 연구가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것임을 보여주는 데 있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2.

  먼저 ‘신라’라는 나라 이름에는 이표기(異表記)가 여럿이었음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어 임금의 칭호가 여럿이 있었음을 지난번에 보았지만 나라 이름도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어 사서(史書)에 나타나는 신라 국호의 이표기가 10여 종이나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온 사실입니다.1)

  나라 이름이 ‘신라(新羅)’로 확정된 것은 제22대 지증마립간 4년(서기 503년)의 일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건국을 서기전 57년으로 보면 5백년 이상이나 나라 이름이 확정되지 않았던 셈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지 현대의 우리로서는 얼핏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삼국사기」 권4(신라본기 제4), 지증마립간 4년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4년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始祖)께서 창업을 하신 뒤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사로(斯盧)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에는 덕업일신(德業日新), ‘라(羅)’에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의 뜻이 있으므로 이를 국호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여기에 제시된 것은 ‘신라(新羅)’에 쓰인 한자(漢字)의 뜻에 의지한 어원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옳지 않은 것임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신라(新羅)’는 ‘사라(斯羅)’나 ‘사로(斯盧)’와 마찬가지로 발음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일 뿐이니, 이 표기에 쓰인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다만 신라의 중신들이 자기네 나라 이름에 이런 뜻이 있다고 믿고 있었음을 인정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3.

  ‘신라’의 어원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먼저 발표된, 주목할 만한 것으로 전몽수(田蒙秀) 선생의 「신라(新羅)의 명의(名義)」(『한글』 8권 4호, 1940)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무렵은 국어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겨우 첫걸음을 내디디었을 때였습니다. 이 글은 ‘신라(新羅)’, ‘사로(斯盧)’, ‘신로(新盧)’ 등이 ‘실애’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곡간(谷間)의 뜻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중요한 부분을 옮기면서 문장을 조금 고쳤습니다.

(2) 곡(谷)의 고훈(古訓)에 ‘실’이 있으니 아직도 지명에 ‘항실(大谷)’, ‘묵실(黙谷)’, ‘밤실(栗谷)’, ‘목실(項谷)’이라 함이 있거니와(『한글』 잡지의 지명조사란 참조) 「삼국유사」 황룡사장륙(皇龍寺丈六) 조에는 “絲浦 今蔚州谷浦”라 한 것이 또 보인다.

(3) ‘애’는 ‘개’의 뜻으로 ‘ㄹ’ 음 아래이기 때문에 ‘ㄱ’이 탈락된 것이니 ‘개천’, ‘개울’의 ‘개’는 이 말로, 천(川)의 뜻으로 이해할 것이요, 포(浦)의 뜻도 이에서 출발한 것임은 다시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4) 이 ‘실애’의 전(轉)인 ‘시내’는 바로 곡천(谷川)의 뜻으로 ‘계(溪)’를 일본어의 훈(訓)으로 tani-gawa라 함과 같은 말본이다. 진작 상대(上代)에는 ‘시내’를 ‘실애’라 하였음을 ‘시라손(豹, 「훈몽자회」 상18)’에서 알 수 있다. ‘시라’는 ‘실애’의 변체(變體)로 곡간(谷間)의 뜻이요 ‘손’은 객(客)의 뜻에서 전(轉)한 패자(覇者)의 뜻이니 천연두(天然痘)를 ‘손님’이라 함도 ‘무서운 것’이란 뜻이다. 즉 이 ‘시라손’은 ‘곡간(谷間)의 패자(覇者)’란 뜻이다.

  (2)에서 ‘실(谷)’에 대하여 『한글』 잡지의 ‘지명 조사란’을 참조하라고 하고 이희승(李熙昇) 선생의 논문을 들지 않은 것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한글』(1권 2호, 1932)에 실린 이희승 선생의 「지명 연구의 필요」는 주로 충청, 경상, 전라 지역의 속지명 27개를 찾아내어 골짜기를 가리킨 옛말 ‘실’의 존재를 밝힌 중요한 논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의 「삼국사기」의 인용은 일찍이 권덕규(權悳奎) 선생이 「조선어 연구 여초(餘草)」(1929)에서 든 것입니다. 더구나 이 내용은 『한글』(7권 1호, 1939)의 「버리다 만 산고(散稿)」에도 실려 있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음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3)에서는 고대국어에 냇물을 뜻한 ‘개’가 있었음을 전제로 하였는데 이 전제 자체가 의문스럽습니다. 확실한 것은 ‘개(浦)’뿐입니다. 이것과 ‘개울’, ‘개천’의 ‘개’를 같은 말이라 한 것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실개’란 말이 고대국어에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만에 하나, 있었다고 가정해도, ‘실개>실애’의 변화가 신라 건국 초기에 일어났다고 본 것은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 변화(‘ㄹ’ 뒤에서 ‘ㄱ’의 약화)는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전기 중세어에서나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이기문, 1972, 19면 이하 참고).
  (4)에서 ‘시내’가 ‘실애’에서 변한 것이라고 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내’가 ‘실(谷)’과 ‘내(川)’의 합성어임은 이희승(1932)에서 밝힌 것입니다. ‘시내’의 고형(古形)은 ‘실애’가 아닌 ‘실내’였습니다. 여기서 ‘실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산짐승의 이름 ‘시라손’(현대어: 스라소니)을 든 것은 너무나 과녁을 빗나간 것입니다. 길게 논할 수 없으므로 요약하면, 이 짐승의 이름은 몽고어에서 한국어, 여진어(女眞語), 만주어, 중국어로 흘러들어 온 것입니다. 몽고 문어(文語)에 ‘silegüsün’, 중세 몽고어에 ‘sile’üsün’, 여진어에 ‘šilasun’, ‘šilu’u’, 만주어에 ‘silun’, 중국어에 ‘猞猁猻’이 있습니다. 한국어의 ‘시라손’이 중세 몽고어의 ‘šile’üsün’, 여진어 ‘silasun’과 아주 가까움이 눈길을 끕니다.2) 전몽수 선생의 ‘시라손’ 어원설은 어원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빗나가면 얼마나 멀리 빗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습니다.


4.

  다음으로 양주동(梁柱東) 선생의 ‘신라’ 어원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어원설은 선생의 「조선 고가 연구」(1942)에 보입니다. 향가 25수의 해독에 바쳐진 이 저서는 선생의 독특한 어원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아사달(阿斯達)’을 비롯한 고유명사의 어원설이 많음이 눈에 띕니다.
  양주동 선생의 어원 연구 방법의 특징은 ‘(神)’, ‘(光明)’, ‘(土)’, ‘(東)’와 같은 ‘원어(原語)’를 설정하고 음전(音轉)과 의전(義轉)으로 이들의 소리가 달라지고 뜻이 번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검-곰-금-즘--암-엄(神-母-雌-芽-牙-栂)’, ‘--(光明-國土-原野-都邑)’, ‘-내(土, 野, 川)’, ‘-새-셔-스-싀-시(東-新-始)’ 등).
  이제 ‘신라’에 대한 양주동 선생의 어원 해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 든 저서의 41-44면의 글들을 옮겨 적겠습니다. 문장을 쉽게 고쳤음을 양해하기 바랍니다.

(5) ‘’는 구려(句麗)뿐 아니라 신라에서도 그대로 쓰였으니 우선 그 국호(國號) ‘사라(斯羅)’, ‘신라(新羅)’, ‘사로(斯盧)’, ‘시라(尸羅)’는 모두 ‘’의 차자(借字)로서 크게는 동방(東方), 동토(東土)의 뜻, 좁게는 동천(東川), 동부(東部)란 지명에서 국명이 생긴 것이다.

(6) 대개 북방 ‘(發, 夫餘,)’족이 동쪽 또는 동남쪽을 향하여 이주함에 따라 신국(新國), 서국(曙國) 내지 동방(東方), 동토(東土)의 뜻으로 도처마다 광야의 지명을 ‘’, 천변(川邊)의 지명은 ‘내’라 이름한 것이니, ‘사뇌야(詞腦野)’는 곧 ‘’로서 저 신라의 국호 ‘서나벌(徐那伐)’과 일치하는 것이다.

(7) 요컨대 신라의 칭호는 ‘, 내, 내, ’의 네 종류인데 ‘’는 족칭(族稱)을 겸한 범칭(汎稱) 또는 약칭(略稱)이요 ‘’로부터 ‘’까지는 그 주요 부락(部落)의 발전, 융흥상(隆興相)을 계단적으로 보이는 칭호이다.

(8)  18_15.jpg (原, 國) - 셔 - 셔울(京) 
골(谷, 邑) - 싀골 - 스굴(卿)
(川, 壤) - 시내


  이로써 고대의 나라 이름, 고장 이름에 대한 양주동 선생의 어원 해석이 위에서 말한 몇 원어(原語)로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음전(音轉)과 의전(義轉)이란 두 쌍검을 휘두르면 가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큰 스케일의 환영(幻影)에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이런 방법은 현대 언어학의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주동 선생이 스스로의 어원설을 도표(圖表)로 보인 (8)은 선생의 방법의 허점(虛點)을 잘 보여줍니다. ‘싀골’, ‘스굴(卿)’은 16세기 문헌에 나타난 어형이요, 15세기 중엽의 문헌(「용비어천가」)에 나타난 어형은 ‘스’이었습니다. 이것은 ‘스’와 ‘’(현대어: 고을)로 분석되는 말입니다.3)

‘골(谷)’과는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그리고 ‘’은 다시 ‘’와 ‘’로 분석될 수 있습니다. ‘’은 ‘셔(현대어: 서울)’의 ‘’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시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谷)’과 ‘내(川)’의 합성어입니다. ‘(東)’와는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 ‘셔’, ‘셔울(京)’의 기원을 ‘’와 ‘’로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끝머리에서 간단하게나마 논할 생각입니다.


5.

  위의 두 분의 연구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낼까 했지만, 조지훈(趙芝薰) 선생의 「신라 국호 연구 논고」(1955)에 대하여 짧게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긴 논문입니다. 외양으로 보면, 논문다운 논문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국어사 연구의 전문가가 아닌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집니다.
  이 논문은 신라 국호의 원음형(原音形)이 ‘(斯盧國, 徐羅伐)’이요(177면), 이 ‘’의 원음형은 다시 ‘소로벌’, ‘수리벌’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181면) 우리나라 지명에 자주 보이는 ‘소로’, ‘수리’를 ‘’와 결부시킨 것입니다. 이 ‘소로, 수리’가 ‘상(上)’, ‘고(高)’를 나타냄에 착안하여 조 선생은 ‘’의 원의(原義)는 상국(上國), 고국(高國)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182면).
  선생의 논의에서는 ‘ㅅ’, ‘ㄹ’의 두 자음만 중시되었고 모음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이것은 현대의 어원 연구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방법입니다.


6.

  끝으로 제 생각을 조금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보기에, 고금(古今)을 통하여 ‘신라’의 어원과 관련된 논의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삼국유사」(권1, 신라 시조)에 ‘서벌(徐伐)’에 붙인 다음 주기(註記)입니다.

(9) 지금 속(俗)에 ‘경(京)’ 자의 새김을 ‘서벌(徐伐)’이라 이르는 것도 이 까닭이다(今俗訓京字云徐伐 以此故也).

  「삼국유사」를 찬술(撰述)한 13세기 말엽(1285)에는 서울을 ‘셔’이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말이 신라의 국호 ‘서벌’(徐伐, 15세기의 우리나라 한자음으로는 ‘셔벌’)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모로 보나 믿음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셔’과의 관련에서 종래 까맣게 잊어 온 것이 하나 있음을 지적해 둡니다. 그것은 「탐라지」(耽羅志)에 그곳의 특이한 방언 단어 일곱이 기록되었는데 그 맨 처음에 나오는 ‘셔나(西那)’입니다.

(10) 서울을 ‘셔나’라 한다(以京爲西那).

  현재 제주 방언에서는 ‘셔나’, ‘서나’란 말은 쓰이지 않습니다. ‘서울’, ‘서월’이라 합니다. 제주의 옛 방언에 ‘셔나’가 있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증언입니다.
  이 ‘셔나’와 ‘셔’을 비교하면 ‘셔’는 같고 ‘나’와 ‘’이 다릅니다. ‘나’는 땅의 뜻을 가진 말로 추정됩니다. 만주어와 퉁구스제어(Tungus諸語)에 바로 na(땅)가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단독으로 쓰인 예는 없지만 ‘나라[國]’의 ‘나’가 바로 이 말입니다. ‘’은 ‘고을(郡, 州)’의 중세어형 ‘’에 양모음형 ‘’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고장을 가리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볼 때, ‘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로 남습니다. 이 ‘셔’는 예전의 ‘시라/시로(斯羅, 斯盧, 尸羅 등)’에서 변한 것입니다. 둘째 음절이 ‘라(羅)’와 ‘로(盧)’로 표기된 것은, 조금 상상력을 더하면, ‘’, ‘르’ 또는 ‘러’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한 말인가를 밝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옛 지명이라고만 하고 불문(不問)에 부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이 있지만, 또 하나의 우(愚)를 범(犯)하지 않기 위해서 공표하는 일은 삼가기로 하겠습니다.

 

 

참고 논저

權悳奎(1929), 「朝鮮語 硏究 餘草」, 『新生』 2.2-2.4.
______(1939), 「버리다 만 散稿」, 『한글』 7.1.
權仁瀚(2008), 「新羅 國號 異表記와 古代 韓國語 音韻現象의 展開」, 『口訣硏究』 20.
梁柱東(1942), 『朝鮮 古歌 硏究』, 博文書館.
李基文(1972), 『國語 音韻史 硏究』, 塔出版社.
______(1982), 「素月詩의 言語에 대하여」, 정병욱선생 환갑기념논문집, 신구문화사.
______(1991), 『國語 語彙史 硏究』, 東亞出版社.
李熙昇(1932), 「地名 硏究의 必要」, 『한글』 1.2.
田蒙秀(1940), 「新羅의 名義」, 『한글』 8.4.
趙芝薰(1955), 「新羅 國號 硏究 論考, 新羅 原義故」, 高麗大學校 50周年 記念論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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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기우(杞憂) / 식자우환(識字憂患)

    필자
    [儒林 속 한자이야기] (22) 유림 99에 憂憤이 나온다. 憂는 마음 속에 근심이 있음을 뜻하는 글자다. 심장을 본뜬 心( )이 들어간 한자는 거의가 忌(꺼릴 기:己 몸기+心),忍(참을 인), 忘(잊을 망), 忙(바쁠 망), 忿(분할 분), 怒(성낼 노), 悟(깨달을 오), 悲(슬플 비), 悼(슬퍼할 도), 情(뜻 정), 惻(슬퍼할 측), 感(느낄 감), 懺(뉘우칠 참)처럼 그 뜻은 마음(心, )과 관련되어 있으며, 음은 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된다. 憂자가 들어간 한자는 優(넉넉할 우,광대 우), ...
    Date2008.05.05 Views1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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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중세몽고어 차용어에 대하여

    필자이기문
    1. 일찍이 이수광(李睟光)은 그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우리 나라 향어(鄕語)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最不可解者)”으로 다음의 다섯 단어를 들었다(권 16). (1) 어선(御膳)을 일러 ‘수라’(水剌)라 하는 것. (2) 내관(內官)을 일러 ‘설리’(薛里)라 하는 것. (3)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나리’[進賜]라 부르는 것. (4) 종이 주인을 ‘상전’(上典)이라 부르는 것. (5) 노비수공자(奴婢收貢者)를 일러 ‘달화주’(達化主)라 하는 것. 이것은 ...
    Date2008.05.03 Views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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