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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몽고어 차용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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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기문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07_4/17_9.html

수라11.jpg 1.

일찍이 이수광(李睟光)은 그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우리 나라 향어(鄕語)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最不可解者)”으로 다음의 다섯 단어를 들었다(권 16).

 

(1) 어선(御膳)을 일러 ‘수라’(水剌)라 하는 것.

(2) 내관(內官)을 일러 ‘설리’(薛里)라 하는 것.

(3)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나리’[進賜]라 부르는 것.

(4) 종이 주인을 ‘상전’(上典)이라 부르는 것.

(5) 노비수공자(奴婢收貢者)를 일러 ‘달화주’(達化主)라 하는 것.

     이것은 호원(胡元)의 ‘달로화적’(達魯化赤)이 와전(訛傳)된 것이라 한다.

 

이 글의 내용은 하루아침에 불쑥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평소에 우리말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옛날에도 우리말을 이만큼 깊이 생각한 분이 있었다니 참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이 말들을 그 한자(漢字) 표기를 통해서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므로 그야말로 ‘불가해(不可解)’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위에서는 당장의 편의를 위하여 우선 현대어의 어형(語形)을 제시하였으나 좀 불편하더라도 당연히 그 고형(古形)을 찾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고형을 제시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1)은 옛날에 어떻게 읽혔을까. 이 말이 한글로 표기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서의 일이었다. 장렬 왕후(莊烈王后)와 인선 왕후(仁宣王后)의 언간(諺簡)에 ‘슈라’라 표기된 예가 보인다.1)   그 이전의 문헌에는 한자(漢字)로 ‘水剌’라 기록되어 있어 그 정확한 발음을 추정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훈」(內訓)에 ‘水:剌·랑’(1.40)이라고 한글 표기가 있어 옛 발음 추정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내훈」의 한자음 표기는 전반적으로 「동국정운」(東國正韻)을 따랐는데 ‘水:’도 그 한 예다. 그런데 ‘剌·랑’은 뜻밖이다. 「동국정운」(2.41)에는 ‘·랋’로 표기되어 있는 것인데2)  어찌하여 이렇게 고쳤을까. 이것이 착오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단어의 둘째 음절의 실제 발음이 ‘라’여서 이 발음에 가깝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고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15․16세기에 ‘水’의 실제 발음이 ‘·슈’였던 증거는 여러 곳(「육조법보단경」 상 80, 상 97 등, 「훈몽자회」 하 35)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한자로 ‘水剌’라 표기된 이 단어의 15세기의 발음이 ‘·슈·라’였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제목에 밝힌 바와 같이 중세 몽고어 차용어에 대해서, 몇 예를 들어 논하려고 하는데, 왜 「지봉유설」의 글을 인용했을까 의아해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까닭은 위에 인용한 글에 나오는 다섯 단어 중 세 단어가 바로 중세 몽고어 차용어이기 때문이다. 예나 이제나 차용어란 그 유래(由來)를 모르면 이상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수광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서 중세 몽고어와 몽고 문어(文語)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몽고어의 역사는 고대, 중세, 근대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중세 몽고어의 시기는 12세기에서 15세기 걸친다. 중세 몽고어에는 방언들이 있었는데 그중 동방(東方) 방언이 파스파 문자로 기록된 것과 한자로 기록된 「원조비사」(元朝秘史) 및 「화이역어」(華夷譯語)에 남아 있다. 이 동방 중세 몽고어가 13세기에 우리 한국어와 접촉을 가졌던 것이다. 한편 몽고어는 12세기 무렵부터 위구르 문자를 빌려 표기되기 시작하였고 그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 문어에는 고대 몽고어의 특징이 남아 있어 몽고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되어 왔다.

 

2.

먼저 (1)에 대해서 간단히 논하기로 한다. 이미 위에서 그 고형(古形)이 ‘·슈·라’였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내가 이 말이 중세 몽고어 차용어로 추정됨을 처음 지적한 것은 1972년에 간행된 「국어사 개설」(개정판)에서였고 1978년의 논문(「어휘 차용에 대한 일 고찰」)에서 비교적 상세히 논한 바 있다. 그때 내 연구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방종현(方鍾鉉) 선생의 「고어재료사전」의 후집(後集, 1947)에 있는 ‘水剌’ 항목에 실린 다음 글이었다.

 

(6) 水剌는 본래 몽고어다. 중국어로 탕미(湯味)다. (水剌本蒙古語 華言湯味也)

 

이 글은 평양본(平壤本)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 학자 다가와 고조(田川孝三)가 간직하여 온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가 1971년에 일본에서 영인되었는데 그 후집(상 38)의 ‘사옹원 수라’(司饔院水剌)의 주해에도 (6)과 같은 글이 있음을 안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이 글에 의지하여 중세 몽고어에서 탕(湯)을 의미한 단어를 찾아보았다. 몽고 문어에 탕을 의미한 단어 silü(n)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일은 쉽게 이루어졌다. 우선 「원조비사」와 「화이역어」에 이 말이 있는가를 찾아보았다. 이런 경우에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원조비사」에 대해서는 Haenisch(1939)를, 「화이역어」에 대해서는 Lewicki(1949, 1959)를 펴 보는 것이다.3)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원조비사」와 「화이역어」는 몽고어를 한자(漢字)로 표기한 책인데 위의 책들은 그 몽고어 단어들을 로마자로 전사(轉寫)하고 그 뜻을 각각 독일어와 불어로 써 넣은 어휘집이어서 보기에 아주 편리한 것이다. 이 책들에서 내가 찾는 단어가 šülen임을 곧 알 수 있었다.

 

  「원조비사」의 한문 원본을 확인해 보니 단독형은 ‘暑漣’(šülen), 처격형(處格形)은 ‘暑洌捏’(šülene)로 표기되었고 「화이역어」에는 단독형이 ‘書連’(šülen)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여기서 몽고 문어의 silü(n)과 중세 몽고어의 šülen을 비교할 때 두 가지 두드러진 차이를 볼 수 있다. 첫째, 첫 음절의 si와 šü의 차이가 눈길을 끈다. 이것은 중세 몽고어가 모음 i의 꺾임(breaking)을 입은 결과였다.

 

즉 첫 음절의 i가 둘째 음절의 ü에 동화(同化)되어 ü가 되고 모음 i의 흔적이 남아 s가 š가 된 것이다. 이 꺾임은 중세 몽고어에서 일어난 가장 현저한 음운 변화의 하나였다. 둘째, 문어의 lü와 중세 몽고어의 le의 차이도 눈길을 끈다. 이것은 중세 몽고어가 šülün>šülen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해석된다.4)  

 

아마도 원(元)의 세력이 고려에 미쳤던 13세기에 이 šülen이 한국어에 차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한국어에 들어온 것은 말자음 n이 없는 šüle였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몽고어의 명사에는 어말음 n이 유동적인 예가 많은데 이 단어도 그중의 하나였다(주4의 방언형들 참고).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흥미 있는 사실은 차용 과정에 일어난 어말 모음의 변화였다. 맨 처음의 차용형은 šüle에 충실한 ‘슈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어로서는 어색한 어형이었다. 한국어에 ‘러’로 끝난 명사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러’가 ‘라’로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가 ‘슈라’였다. ‘러’가 ‘라’가 된 이유는 이렇게 설명하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한다. 이런 이유를 상정(想定)하는 것이 결코 억지가 아님은 이와 같은 변화를 입은 또 하나의 몽고어 차용어가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중세 몽고어의 ǰe’erde(赤馬)의 차용인 ‘졀다’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5)    몽고어의 de는 ‘더’가 되어야 할 것인데 ‘다’로 된 것이다. 이 역시 한국에서는 ‘더’로 끝난 명사가 어색하여 ‘다’로 바뀐 것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슈라’의 차용을 고찰함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본래 탕을 의미한 단어가 어떻게 어선(御膳)을 의미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은 이 몽고어 단어가 이란어, 터키어 등에도 차용되었는데 이란어에서는 국가 향연(Staatsbankett)을 의미하며 차가타이어에서는 공적 연회(öffentliche Festlichkeίt)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6)   이 사실은 중세 몽고어 자체에서 이 말이 제왕(帝王)의 선식(膳食)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와 이란, 터키에서 이런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더 두고 연구할 문제로 남겨 둔다.

 

 

3.

다음으로 (2) 역시 중세 몽고어 차용어로 추정되는 단어의 하나다. 「경국대전주해」(후집, 상 38)에 있는 ‘薛里’에 다음과 같은 주(註)가 붙어 있음을 본다.

 

(7) 본래 몽고어다. 화언(華言)으로 助이다.(本蒙古語 華言助也)

 

처음 이 글을 보았을 때 해당할 만한 몽고어 단어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으나, 의미까지 분명히 적혀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예감은 빗나갔다. 아직까지 나는 이에 합당한 몽고어 단어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무엇보다도 ‘薛里’를 옛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것부터 문제로 제기되었다. 위에서 우리가 ‘설리’라고 한 것은 현대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옛 문헌에서 이렇게 읽은 기록은 볼 수가 없다.

 

한자로 ‘薛里’라 표기된 이른 예는 「고려사」(高麗史, 권 135)에서 볼 수 있고 그 뒤로 「세종실록」(권 81), 「세조실록」(권 32)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읽었는지를 밝힌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내훈」(1.40)에 보이는 ‘섭·니’다. 한문 원문의 ‘膳宰’를 번역한 말이다. 시대는 상당한 상거가 있지만 이의봉(李義鳳)의 「고금석림」(古今釋林)의 ‘동한역어’(東韓譯語)에서 다음과 같은 주해를 발견할 수 있다.

 

(8) 薛里는 속(俗)에 ‘섭니’라 부른다. 혹 원어(元語)라는 말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훈」의 ‘섭·니’가 ‘薛里’와 직결됨을 보여준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원어’, 즉 중세 몽고어 기원설을 말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우리의 탐색 작업도 당연히 ‘섭·니’에 기대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4.

이제 (5)에 대해서 논하기로 한다. 다섯 단어 중에서 유일하게 이 (5)에는 ‘달화쥬’(達化主)가 원(元)의 ‘달로화적’(達魯化赤)에서 변한 말이라고들 한다는 주석이 붙어 있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이 주석은 옳은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사」에 ‘달로화적’(達魯花赤)이란 관직명이 보인다. 셋째 글자가 ‘化’ 아닌 ‘花’로 되어 있다. 이것은 「원사」(元史), 「원전장」(元典章)의 표기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관직명은 중세 몽고어 단어 daruqači(문어 daruγači)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daru-라는 동사 어간에 파생 접미사 -qači(문어 -γači)가 붙어서 형성된 명사였다. 동사 daru-의 의미를 「원조비사」는 ‘누르다(壓)’, ‘이기다, 정복하다(勝)’라 하였다.

 

  「원조비사」에는 ‘荅魯合臣’ daruqačin이라 표기되고 ‘鎭守官名’, ‘官名’이란 방석(傍釋)이 붙어 있다. daruqačin은 daruqači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daru-에는 도장을 찍는다는 뜻도 있어 ‘장인관’(掌印官), ‘관인관’(管印官)이라 변역된 예도 있다.7)    나로서는 이에 대해서 길게 말할 능력이 없으나 ‘다루하치’는 원(元)의 국가 통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관인(官人)이었음을 강조함에 그치려 한다.

 

강력한 원(元)의 세력이 미친 고려에서 ‘다루하치’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우리나라에 주었는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오죽했으면 이 명칭이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을까. 그런데 이 명칭이 ‘노비수공자’(奴婢收貢者)를 가리키게 되었다니 이 명칭은 악역(惡役)과 인연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루하치’가 ‘달화쥬’로 변한 데는 민간 어원(popular etymology, folk etymology)의 개입이 엿보인다. 차용어가 민간 어원이 개입하는 단골임은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주석

1) 김일근(1986)의 자료 원문 37(188면)과 84(197면) 참고. 앞의 것도 김일근(1959)에는 인선 왕후의 언간으로 되어 있었다.

2) ‘이영보래’(以影補來)의 한 예다. 이를 따르지 않고 ‘·랑’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3) 이 뒤에 Rachewiltz(1972), Mostaert(1977)가 나와 더욱 확실해졌다. 

4) 이 단어의 현대 방언형들이 이 변화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오드도스 šölö, 할하 šöl(lö), 칼묵 šölṇ 등. 몽고문어에서는 흔히 silü가 쓰였다. 

5) 말 이름에 몽고어 차용어가 많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세한 것은 이기문(1991)에 실린 글을 참고.

6) Doerfer(1963)의 368~370면 참고. 

7) 이 명칭에 대한 설명은 Cleaves(1953) 참고.  

 

참고 문헌

김일근(1959), 『이조 어필 언간집』, 나라출판사.

            (1986), 『언간의 연구』, 건국대학교 출판부.

방종현(1946~47), 『고어 재료 사전』, 동성사.

이기문(1991), 『국어 어휘사 연구』, 동아출판사.

Cleaves, F.W(1953), Daruγa and Gerege,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12, 1~2.

Doerfer, G(1963), Türkische and mongolische Elemente im neupersischen, Band I. Wiesbaden.

Haenisch, E(1939), Wörterbuch zu Manghol un Niuca Tobca'an, Leipzig.

Lewicki, M(1949), La Langue mongole des transcriptions chinoises du XlVe siècle, Le Hoag-yi yi-yu de 1389, Wroclaw. 1959 Ibid, Ⅱ, Wroclaw.

Mostaert, A(1977), Le matériel mongole du Houa i i iu 『華夷譯語』 de Houng-ou(1389).

Rachewiltz, I(1972), Index to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Bloom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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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28]강창석 2008.05.03 12:28
    글 쓴 분의 사진은 원문에는 없는데, 옮기면서 추가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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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중세몽고어 차용어에 대하여

    필자이기문
    1. 일찍이 이수광(李睟光)은 그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우리 나라 향어(鄕語)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最不可解者)”으로 다음의 다섯 단어를 들었다(권 16). (1) 어선(御膳)을 일러 ‘수라’(水剌)라 하는 것. (2) 내관(內官)을 일러 ‘설리’(薛里)라 하는 것. (3)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나리’[進賜]라 부르는 것. (4) 종이 주인을 ‘상전’(上典)이라 부르는 것. (5) 노비수공자(奴婢收貢者)를 일러 ‘달화주’(達化主)라 하는 것. 이것은 ...
    Date2008.05.03 Views1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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