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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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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홍윤표(洪允杓)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news/200212/53_1.html


설거지7.jpg 대부분의 사전들은 '설거지'를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로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설겆-'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생긴 말이다. 그렇다면 '설겆-'은 무엇일까?

 

현대국어에서 '설겆다'는 쓰이지 않지만,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던 15세기의 문헌에는 '설엊다'라는 동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그 이전에는 '설겆다'란 동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설엊다'는 '설겆다'의 '겆'의 'ᄀ'이 'ᄅ' 뒤에서 탈락하여 '설엊다'로 표기된 것이다. 이것이 원래부터 '설엊다'였으면 '설엊다'로 표기되지 않고 '서럿다'로 표기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부터 'ᄀ'이 없었으면 연철하여 표기하고, 'ᄀ'이 있었던 것이 탈락한 경우이면 연철하여 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1)

ᄀ. 즁님낸 다 나가시고 갸 몯 다 설어젯더이다 <월인석보(1459년), 23권>
ᄂ. 사발 뎝시 설어즈라 <번역노걸대(16세기), 상권>
ᄃ. 머구믈 차든  그릇 설어저 오라 (收拾家事來)<번역노걸대 상권>

 

'갸'(家事)는 '식기류'(食器類)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사발, 접시, 그릇' 등인 것을 보거나 또 "먹음을 마치거든 또 그릇들 설어저 오라"(먹기를 마치거든 또 그릇들을 정리하여 와라)와 같은 예문을 보면, '설엊다'는 오늘날의 '설거지하다'와 동일한 의미인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짐이나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설엊다'라고 하였다. 아래의 예문들을 보면 그 뜻이 '수습하다, 정리하다'란 뜻임을 알 수 있다.

 

(2)

ᄀ. 우리 리 짐 설어즈라 <번역노걸대, 상권>

ᄂ. 설엇다 (收拾) <어록해(1657년)>

 

그런데 15세기 국어에는 '수습하다, 정리하다'란 뜻을 가진 고유어가 있었다. '설다'가 그 단어이다.

 

(3)

ᄀ. 香 섯 버므러 잇고 가 몯 다 서러 잇 시 옛더니 <월인석보, 권23>
ᄂ. 주거미 집 안해 하엿늘 셰간만 다 서러 가니라 <삼강행실도(16세기), 열녀도>

 

이 '설다'가 '설엊다'의 '설'과 같은 뜻을 가졌다는 사실은 '설다'의 '설-'과 '설엊다'의 '설'이 방점이 동일하고, 또 다음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문맥에 '설엊다'와 '설다'가 같이 쓰인 것에서 알 수 있다.

 

(4)

ᄀ. 主人아 등잔블 켜 오라 우리 잘 를 서럿쟈 <노걸대언해(1670년), 상권>
ᄂ. 쥬하 블 혀 가져 오고려 우리 잘 서러 보아지라 <번역노걸대,상권>

 

그래서 '설엊다'는 '설다'와 '겆다'로 분석됨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겆-'은 무엇일까? 어떤 학자는 이 '겆-'은 원래 '걷다'(收)의 어간 '걷-'이 뒤에 접미사 '-이'가 와서 구개음화되어 '걷이'가 '거지'가 되어서 된 것이라고, 즉 '설걷이'가 '설거지'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설겆다'는 '설거더, 설거드니' 등으로 표기된 적이 없고, 또 구개음화가 일어나기 전부터 '설어젯더이다, 설어저, 설어주믈' 등으로 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겆다'라는 동사가 문헌에서 쓰인 예를 발견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아마도 '설다'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설다'와만 통합되었던 유일 형태소였던 것 같다.

 

15세기에는 '설거지'는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 '설거지하다'란 동사도 있을 리가 없다. '설거지하다'에 대응되는 옛말은 '설엊다'였었는데, 18세기에 '설다'와 함께 사라지게 된다. 방언에는 아직도 이들 형태가 남아 있지만(설겆다 <전남: 목포, 진도>, 설다 <전남: 함평>, 설르다 <제주>), 표준어에서는 우연하게도 '설엊다'와 '설다'가 운명을 같이 한 것이다.

 

이의 명사형이 보이는 것은 19세기말이다. '설거지하다'가 생긴 것도 당연히 그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설거지하다'가 '수습하다, 정리하다'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고 '음식을 먹고 난 후에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행위'만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수습하다, 정리하다'의 뜻은 한자어로 대치된 것으로 보인다.

 

(5)

ᄀ. 설거지(滌器) <국한회어(1895년)>
ᄂ. 점순 어멈이 밥상을 보면 양천집은 설거지를 하고 <계집하인(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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