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 쇠천, 천, 천량, 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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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기문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07_3/17_5.html

엽전2.jpg 1. 피천

 

여섯 권으로 된 한글학회의 『큰 사전』(1947∼1957)이 한국어 사전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어떤 단어의 의미나 용법에 미심스러운 데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이 사전부터 펴 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피천’이란 말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에도 우선 이 사전(권 6, 3294면)을 펴 보았다.

 

(1) 피천 한 잎 없다. (익은말)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이 사전에 이런 표제어가 있음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이 사전의 ‘범례(凡例)’(권 1, 첫머리)에 “마디 말(成句語)은 어휘 자리에 따로 올리지 아니하고 그 마디 중의 주요한 낱말의 자리에서 그 낱말 주해의 뒤에 붙이었음”이라 했으면서도 (1)과 같은 표제어가 있음은 뜻밖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위의 규정에 따른다면 ‘피천’을 표제어로 제시하고 그 주해 뒤에 예문으로 “피천 한잎 없다”를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큰 사전』에서 (1)과 같은 표제어가 제시된 것은 그보다 앞서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1938)의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1514면).

 

(2) 피천샐닢-없다 (-샐리법-) <形>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이 사전은 ‘일러두기’에서 “우리말이나 한문으로 된 속담, 성귀(成句)들도 항용 많이 쓰는 것은 골라 넣기로 하였습니다”라 하였고 실제로 이런 표제어들이 적잖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피천’의 본뜻인데, 위의 두 사전은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주지 못한다. 다만 ‘피천’이 적은 액수의 돈과 관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할 뿐이다.

 

『큰 사전』 이후에 간행된 사전들은 ‘피천’을 표제어로 제시한 점에서만 달라졌을 뿐, 주해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이제 그 주해만 옮기면 다음과 같다.

 

(3) 피천 (명) 아주 적은 액수의 돈. (이희승, 『국어대사전』, 1961)

(4) 피천 (이) 노린동전.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1992)

(5) 피천 (명) 노린동전.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1999)

 

(4)와 (5)가 ‘노린동전’이라 했으나 (3)이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라 한 것과 사실상 다름이 없다. 다만, (4)가 그 주해의 맨 끝에 ‘피’는 불문(不問)에 부친 채, ‘천’을 ‘錢’이라 본 것이 조금 돋보일 뿐이다.

 

위에 든 (1)∼(5)가 한결같이 보여 주는 것은 ‘피천’은 그 쓰임이 극히 국한된 말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 본뜻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라거나 노린동전과 같다고 한 것은 ‘피천’의 본뜻이 아니라 ‘피천 한 잎도 없다’, ‘피천 샐닢도 없다’와 같은 관용구에서 미루어 헤아린 뜻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19세기 말엽에 편찬된 사전들에서는 ‘피천’에 대한 한결 분명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한영뎐』(1897)의 ‘쇼쳔’ 항(607면)에서 우리는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6) 쇼쳔 s. (쇠) 小錢 Chinese cash. See 피쳔.

 

여기서 ‘피쳔’ 항을 보라고 한 것은 유의어(類義語)를 제시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 사전에서는 ‘피쳔’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대신 ‘피젼’ (474면)이 있음이 눈에 띈다.

 

(7) 피젼 s. Cash minted thin.

 

“얇게 주조된 엽전”이란 주해가 있음을 보아 ‘피젼’은 ‘피쳔’과 같은 말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피젼’은 그 앞뒤의 표제어들로 보아 ‘피쳔’의 오자(誤字)로는 볼 수 없으니 이런 발음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뿐이다.

 

둘째, 『국한회어』(國漢會語, 1895)에 “피천오리도업다”가 두 군데 실려 있음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8) 피천오리도업다 無皮錢五里 (107면)

(9) 피천오리도업다 無彼錢五釐 (701면)

 

(8)은 초고본(初稿本)에, (9)는 개고본(改稿本)에 있는 것인데1)   ‘皮錢’이라 했던 것을 ‘彼錢’이라 고쳤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고쳐 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책의 편자가 ‘피천’에 대한 확신이 없었음을 보여 준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천’을 이렇게 한자로 표기한 예가 달리 없으니 매우 소중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皮錢’이나 ‘彼錢’이 있는지, 중국어 사전들을 뒤적여 보았다. 거기서 나는 ‘皮錢’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漢語大詞典』(1990∼1993)의 ‘皮錢’(권 8, 523면)의 주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0) 명(明)나라 때에 주조한, 얇고 작은 동전의 한 가지.

 

여기에 덧붙어 있는 인용문에는 ‘皮錢’이 여러 지방에서 주조된 것이었음이 지적되어 있다. 이로써 『국한회어』 초고본의 표기가 옳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19세기 말엽까지도 어렴풋이나마 알려져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아마 이보다 더 옛날에는 이 말의 내력이 더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 증거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 몹시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증거가 뜻밖의 곳에서 발견되어 내 궁금증이 확 풀리게 되었다. 지난번에 쓴 내 글(‘승기악탕’)에서 소개한 이가환(李家煥)의 『정헌쇄록』(貞軒瑣錄)에서 ‘皮錢’에 관한 짤막한 글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번역(『민족문학사연구』, 통권 31호, 442면)을 옮겨 본다.

 

(11) 시속(時俗)에서 경멸하고 천시하는 것을 지목하여 “피전(皮錢) 반푼어치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대개 명나라 때는 경사(京師)와 13성(省)에 각기 관서를 두어 주전(鑄錢)하였던 바, 경사에서 주전한 것이 가장 좋아 속칭 ‘황전’(黃錢)이라 불렀고, 각 성에서 주조한 것은 거칠고 조악해서 속칭 ‘피전’(皮錢)이라 불렀다. 피전 이문(二文)은 겨우 황전 일문(一文)의 가치밖에 없었다. 피전을 얕잡아 본 말투는 연시(燕市)에서 배워 온 것임에 틀림없다.


이 내용은 (10)의 그것과 일치할 뿐 아니라 설명이 훨씬 자세하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첫째는 옛날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즈음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의 일들을 제법 알고 있음을 생각하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연시’(燕市) 즉 연경(燕京, 오늘의 北京) 저자에서 배워 온 것임을 지적한 것은 옛날에는 중국과 한국의 접촉이 얼마나 긴밀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둘째는, 우리나라가 20세기에 들어 이런 옛날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皮錢’을 까맣게 모르게 된 것은 이 단절에서 빚어진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의 역문(譯文)에서 ‘皮錢’을 ‘피전’이라 읽고 아무 주석도 하지 않은 것도 이 단절의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말이 ‘피천’으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2. 쇠천

 

‘피천’의 유의어(類義語)에 ‘쇼쳔’이 있음을 저 위의 (6)에서 보았다. 이보다 앞서 간행 『한불뎐』(436면)의 ‘쇼쳔’항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12) 쇼쳔 小錢 Sapèque chinoise en Corée.

 

이 주석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중국 엽전이란 뜻으로 보아 무방할 듯하다. 『국한회어』의 개고본(544면)에도 이 단어가 보인다.

 

(13) 소천 小錢

 

이 말은 실제로는 ‘소천’보다 ‘쇠천’으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에 보이는 괄호 속의 ‘쇠’는 이 실제 발음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도 ‘小錢’과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짐으로써 ‘피천’의 경우와는 길을 달리할 수 있었다. ‘쇠천’을 표제어로 제시한 최초의 사전은 1920년에 간행된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이었다. 그런데 이 사전에 ‘쇼젼’이 아울러 제시된 것은 야릇한 운명의 장난이라 아니할 수 없다.

 

(14) 쇠천 ‘小錢’(쇼젼)의 轉. (507면)

(15) 小錢(쇼젼) 支那의 黃銅錢. (轉, 쇠천) (509면)

 

‘쇼젼’은 ‘小錢’을 우리나라 한자음으로 읽은 것으로 하나의 허구(虛構)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이것이 그 뒤의 사전들에도 그대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큰 사전』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6) 소전(小錢) (이) 청국(淸國)에서 쓰던 작은 황동전(黃銅錢).  ‘쇠천’이란 이름으로 우리 나라 엽전(葉錢)에 섞이어 쓰이는 일이 있었으나 공식으로는 금하였음. (1775면)

(17) 쇠천 (이) ‘소전(小錢)’의 속칭. (1811면)

 

이 뒤의 사전들은 이것을 되풀이했는데 실제 용례에 인용된 것은 ‘쇠천’뿐이었다.

 

(18) “쇠천 뒷 글자 같다.” (이희승, 국어대사전. 1693면)

(19) “쇠천 샐 닢도 없다.”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2433면)

 

3. 천, 천량, 밑천

 

지금까지의 서술에서 ‘錢’의 발음이 ‘쳔’, ‘천’으로 되었음을 가장 두드러진 사실로 지적할 수 있다. ‘피천’, ‘쇠천’이 근세중국어 차용어임을 보여 주는 징표인 것이다. 15세기의 중세의 문헌에서 우리는 ‘:쳔’의 예들을 볼 수 있다. 몇 예만 든다.

 

(20)

나랏 쳔 일버 (월인천강지곡 3장)

술위 우희 쳔 시러 (월인천강지곡 61장)

쇼로 쳔 사마 흥졍니라 (월인석보 1, 20)

내 쳔을 앗기디 아니며 自財不恡 (영가집언해 하, 139)

얼멋 쳔에 볼모 드릴고 儅的多少錢 (번역박통사 상, 20)

도 내 쳔 쓰고 使時使了我的錢 (번역노걸대 하, 49)

 

이 ‘:쳔’이 중국어의 ‘錢’에서 온 말임은 나중 두 예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중세어 연구에서는 진작부터 그렇게 인정되어 왔다. (20)에 든 나중 두 책에는 ‘:쳔’의 예가 더 있는데 중국어 원문의 ‘錢’에도 ‘:쳔’이라 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중세어에서 ‘:쳔’(錢)이 든 차용어로 ‘:쳔량’과 ‘니:쳔’을 들 수 있다.

  

(21)

천량 만히 시러 (석보상절 6, 15)

내 庫앳 쳔량란 말오 (석보상절 24, 47)

쳔량이 法을 몯 미츨 財不及法 (법화경언해 6, 144)

糧食과 쳔량 아 주고 爲齎粮食 (삼강행실도. 열녀도, 10)

수 업슨 쳔량이더라 無計算的錢粮 (번역박통사 상, 46)

 

마지막 예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쳔량’은 중국어 단어 ‘錢粮(糧)’의 차용어였다. 일찍이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 (권 25, 45장)이 중국어 차용어 열여섯 단어를 든 속에 ‘錢쳔糧랑’(‘랑’은 ‘량’의 잘못)이 포함되어 있고 황윤석(黃胤錫)의 『이수신편』(理藪新編) (권 20, 58장)에도 이를 ‘錢쳔粮량’이라 옮긴 바 있다.2)   이 말이 현대어에서도 사용되고 있음은 다 아는 바와 같다. 이와는 달리 중세어에서는 쓰였는데 근대어에 와서 차츰 쓰이지 않게 된 말로 ‘니:쳔’, ‘리:쳔’이 있었다.

 

(22)

푼 니쳔도 갑포믈 즐겨 아니다 一分利錢也不肯還 (번역박통사 상, 34)

져기 니쳔 어두라 也尋了些利錢 (번역노걸대 상, 13)

리쳔 얻고져 노라 要覓些利錢 (번역노걸대 하, 60)

 

이 말은 ‘이자’(利子)와 ‘이윤’(利潤)의 뜻으로 쓰인 것이었다. 이 말은 『한불뎐』(289면)의 ‘리젼 利錢’에서 『표준국어대사전』(4955면)의 ‘이전(利錢)’에 이르기까지 현대어 사전들에 실려 있으나 별로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쳔’이 ‘전’으로 바뀌어 범상한 한자어가 되고 말았다.

 

차용어 ‘:쳔’(錢)은 우리말에서 매우 친숙하게 쓰여 고유어와 거의 다름이 없었다. 그 증거로 중세어의 ‘믿:쳔’을 들 수 있다. ‘믿’(기본형 ‘밑’)이란 고유어와 결합하여 된 말인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것은 ‘:쳔’이 한국어의 어휘 체계 속에서 아주 친숙한 자리를 차지했었음을 보여 준 것이다.

 

(23) 다믄 내 믿쳔만 갑고 只還我本錢 (번역박통사 상, 34)

 

이 말이 근대어에서 ‘본전’(本錢)의 끈질긴 도전을 받으면서도 현대어에까지 이어 왔으니 그 억센 생명력이 경탄할 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ㆍ:쳔’의 예도 주목할 만하다.

 

(24) 사미 쳔 곳 몯 어드면 가며디 몯니라 人不得横財不富 (번역노걸대 상, 32)

 

원문의 ‘横財’가 역문에 ‘ㆍ:쳔’이라 되었으니 이것은 고유어 ‘ㆍ’(別)과 ‘:쳔’의 결합으로 해석된다. 매우 흥미 있는 말인데 중세어와 근대어 문헌에 달리 예가 없어 얼마나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복합어로 굳어지지 못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매우 애석한 일이다. (24)의 ‘ㆍ:쳔’이 『노걸대언해』에서는 ‘ 財物’이라 번역되어 있음을 본다. 그러다가 이 말은 『청어노걸대』(淸語老乞大)와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에서는 마침내 ‘横財’로 굳어지게 되었다.

 

(25) 사이  財物을 엇디 못면 가여디 못다 (노걸대언해 상, 29)

(26) 사이 横財 엇지 못면 가음여지 못다 엿니 (청어노걸대 2, 21)

      사이 横財 엇지 못면 能히 가여지 못다 니 (몽어노걸대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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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1) 이 책의 영인본(태학사, 1986)을 이용하였다. 홍윤표 교수의 ‘해제’가 많은 도움이 된다.

2) 이기문(2006), 국어학사 이제, 『한국어 연구』, 3호, 100∼101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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