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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관련 사건 기록

by 강창석 on Dec 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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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rok.gif세종 14년(1432) 6월 : 집현전에서 삼강행실을 편찬하여 올리다
집현전(集賢殿)에서 새로《삼강행실(三綱行實)》을 편찬하여 올리었다. 그 서문(序文)에 이르기를,  "천하의 떳떳한 도가 다섯 가지 있는데, 삼강이 그 수위(首位)에 있으니, 실로 삼강은 경륜(經綸)의 큰 법이요, 일만 가지 교화의 근본이며 원천(源泉)입니다. ~
(세종 56권,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6월 9일(병신) 2번째 기사)

 

세종 16년(1434) : 『삼강행실도』를 종친과 신하들에게 내려주다
  頒賜 《三綱行實》 于宗親及臣僚, 又賜諸道。
삼강행실》을 종친(宗親)과 신하들에게 내려 주고, 또 여러 도(道)에 내려주었다.
  (세종 66권, 16년(1434 갑인 / 명 선덕(宣德) 9년) 11월 24일(무술) 4번째 기사)

세종 24년(1442) 3월 : 『龍飛御天歌』편찬을 지시하다
   時上方欲撰龍飛御天歌 故乃下此傳旨. 
   이 때에 임금이 용비어천가를 편찬하고자 하여 이 뜻을 아래에 전하다
   (세종실록 권95, 세종24년 3월 壬戌 조)

세종 25년(1443) 12월 : 임금이 언문 28자를 친히 만드시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 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 권102, 세종 25년 12월 조)

세종 26년(1444) 2월 16일(丙申) : 韻會의 번역을 명하다 
    命集賢殿校理崔恒(중략) 指議事廳 以諺文譯韻會 東宮與晋陽大君瑈·安平大君瑢 監掌其事 皆稟睿斷 賞賜稠重 供億優厚矣
    집현전 교리 최항 등에게 명하여 언문으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다. 동궁 및 진양대군 유와 안평대군 용이 그 일을 감독하고 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두 모두 품하게 하여 직접 결정하다. 상을 내릴 때에는 많고 후하게 하고 모두 대우를 잘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권103,  세종 26년 2월 丙申조)

세종 26년(1444) 2월 20일(庚子) : 최만리 등이 언문 반대 상소를 올리다
     庚子 集賢殿副提學崔萬理等上疏曰~
     경자(20일)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상소하여 말하기를(하략)--
     (세종실록 권 103,  세종 26년 2월 庚子 조)

세종 27년(1445) 1월 : 신숙주·성삼문 등이 운서를 질문하려고 요동에 유배된 黃瓚에게 감.

遣集賢殿副修撰申叔舟·成均 注簿成三問·行司勇孫壽山于遼東 質問韻書
집현전의 부수찬인 신숙주와 성균관의 주부인 성삼문, 그리고 역관 손수산을 요동에 보내어 운서에 대하여 질문하다
(『세종실록』 권 107, 세종 27년 정월 辛巳 조) 
時適翰林學士黃瓚以罪配遼東 乙丑春命公隨入朝使臣 到遼東見瓚質問 公諺字飜華音 隨問輒解 不差毫釐 瓚大奇之 自是往還遼東凡十三度 그 때 한림학사 황찬이 죄를 입어 요동에 유배되었다. 을축년(1445) 봄에 신숙주로 하여금 중국에 들어가는 사신을 따라가도록 명하였다. 요동에 이르러 황찬을 맞나 질문하였는데 신숙주는 언문의 글자로 중국의 발음을 번역하였으며 문제를 쉽게 풀이하여 황찬이 크게 기특하게 여기었다. 이로부터 요동을 갔다 온 것이 13번이다. 
(『保閒齋集』 책7, 부록 李坡의 ‘申叔舟墓誌)

세종 27년(1445) 4월 :『용비어천가』製進

議政府右贊成權踶·右贊參鄭麟趾·工曹參判安止等 進龍飛御天歌十卷
의정부 우찬성 권제, 우참찬 정인지, 공조참판 안지 등이 『용비어천가』 10권을 받치다
(세종실록 권108, 세종 27년 4월 戊申 조)
“正統 十四年 四月 日 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臣 權踶 資憲大夫議政府右參贊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 世子右賓客臣 鄭麟趾 嘉善大夫工曹參判集賢殿提學同知春秋館事 世子右副賓客臣 安止等上
(『龍飛御天歌』 권두에 부재된 安止의 進箋文)

세종 27년(1445) 5월 : 세종이 세자에게 양위하려다가 고만둠.
向者予欲禪位世子 閑居養病 卿等泣請不已 勉從之
(『세종실록』 권108, 세종 27년 5월 甲戌 조)

세종 28년(1446) 3월 : 昭憲王后 昇遐.
王妃薨于修養大君第 왕비가 수양대군의 집에서 돌아가시다
(『세종실록』 권111, 세종 28년 3월 辛卯 조)

세종 28년(1446) 丙寅 :『釋譜詳節』과 『月印千江之曲』 편찬 시작 

 

昔在丙寅야 昭憲王后ㅣ 奄棄營養야시 痛言在疚야 罔知攸措다니 世宗이 謂予샤 薦拔이 無知轉經이니 汝宜撰譯釋譜라 야시 予受慈命 (중략) 撰成釋譜詳節고 就譯以正音야 俾人人易曉케 야 乃進니 賜覽시고 輙製讚頌샤 名曰月印千江이라 시니--
녜 병인년(1446)에 이셔 소헌왕후ㅣ 榮養 리 려시 셜 슬매 이셔  바 아디 몯 다니 世宗이 날려 니샤 追薦이 轉經니 업스니 네 釋譜 라 翻譯호미 맛당니라 야시 내 慈命을 받(중략) 釋譜詳節을 라 일우고 正音으로 翻譯야 사마다 수 알에 야 進上니 보 주오시고 곧 讚頌 지샤 일후믈 月印千江이라 시니--
(『월인석보』 신편의 세조 御製 서문)


세종 28년(1446) 9월 :  『訓民正音』을 완성하다
是月 訓民正音成 御製曰(중략) 正音之作 無所祖述~
이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 임금이 지어 말씀하시기를(중략) 훈민정음을 지은 것은 옛 사람이 저술한 바가 없다.
(『세종실록』권 113, 세종 28년 9월 조)

세종 28년(1446) 11월 : 諺文廳을 설치하다.
  命太祖實錄入于內 遂置諺文廳 考事迹 添入龍飛詩
  태조실록을 입내하도록 명하고 이어서 언문청을 설치하였으며 사적을 고찰하게 하여 용비어천가의 시가에 첨가하여 삽입하도록 하였다
 (『세종실록』 권114, 세종 28년 11월 壬申 조)

세종 28년(1446) 12월 :  吏科와 取才에서 훈민정음을 부과함.
傳旨吏曹 今後吏科及吏典取才時 訓民正音並令試取 雖不通義理 能合字 取之--
이조에 전지하기를 ‘이제부터는 이과와 이전의 취재할 때에는 훈민정음을 함께 시험하되 비록 그 뜻과 이치에 통하지 않더라도 능히 합자할 수 있으면 채용하라’고 하다 --
(세종실록』권114, 세종 28년 12월 己未 조)

세종 29년(1447) 2월 : 『龍飛御天歌』 완성.
殿下覽而嘉之 賜名曰龍飛御天歌(중략) 就加註釋 於是粗敍其用事之本末 復爲音訓 以便觀覽 共十一卷(중략) 正統十二年二月日(중략) 崔恒拜手稽首謹跋
전하가 보시고 기뻐하였다. 이름을 내려주기를 용비어천가라고 하였다. 주석을 더하여 비로소 거칠게나마 일의 쓰임에 있어서 본말을 서술하게 되었다. 다시 발음과 뜻을 붙여 보기에 편하게 하였다. 모두 11권이다. 정통 12년(1447) 2월에 최항이 절하며 머리를 숙여 삼가 발문을 쓰다
 (용비어천가 권10, 최항의 발문)

세종 29년(1447) 4월 :  각종 취재에서 훈민정음 시험 강화.
先試訓民正音 入格者許試他才 各司吏典取才者並試訓民正音
먼저 훈민정음을 시험하고 합격한 자에게만 다른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다. 각 관청에서 이전(吏典)의 취재를 하는 경우 훈민정음을 함께 시험한다.
(『세종실록』권116, 세종 29년 4월 辛亥 조)
 
세종 29년(1447) 7월 :『釋譜詳節』, 『月印千江之曲』 완성.

세종 29년(1447) 9월 : 『東國正韻』 완성
是月 東國正韻成 凡六卷 命刊行
이 달에 동국정운이 완성되다. 모두 6권으로 간행을 명하다(”『세종실록』 권117, 세종 29년 9월 戊午 조)

正統十二年 丁卯 九月下澣
정통 12년(1447) 9월 하순(『동국정운』의 권두에 있는 신숙주의 서문).

세종 30년(1448) 10월 : 『동국정운』을 도와 성균관, 사부학당에 나누어주다
頒東國正韻于諸道及成均館四部學堂 乃敎曰 本國人民熟俗韻已久 不可猝變 勿强敎 使學者隨意爲之
동국정운을 모든 도(道)와 성균관, 사부 학당에 나누어 주다. 그리고 임금이 말씀하기를 ‘본국의 백성들이 속운에 익숙한지 이미 오래되어 갑자기 변경하는 것은 불가함으로 억지로 가르치지 말 것이며 배우는 사람의 뜻에 따르도록 하라’ 고 하셨다
(『세종실록』 권 122, 세종 30년 10월 庚申 조)
 
세종 32년(1450) 1월 : 중국 사신에게 신숙주 등이 운서를 질문함.

命直集賢殿成三問·應敎申叔舟·奉禮郞孫壽山 問韻書使臣 三問等因館伴以見(중략) 三問·叔舟將洪武韻講論良久
집현전 직전 성삼문, 응교 신숙주, 봉례랑 손수산 등이 중국의 사신에게 운서를 질문하다. 성삼문 등이 사신이 머무는 곳에 함께 가서 맞나(중략) 성삼문·신숙주가 홍무정운을 갖고 오래도록 강론하다
(『세종실록』 권 126, 세종 32년 윤정월 戊申 조)

문종 원년(AD. 1450) 10월 :  正音廳 설치.
『문종실록』(권4) 문종 원년 10월 戊戌 조 기사.

문종 2년(1452) 4월 : 『동국정운』 한자음에 의한 과거시험 실시.
禮曹啓 進士試取條件(중략) 一.東國正韻 旣已參酌古今韻書定之 於用韻無所防礙(하략)
예조에서 계하기를 진사 시험의 조건으로(중략) 첫째 동국정운은 이미 고금의 운서를 참작하여 정한 것이어서 운을 맞추는데 방해되거나 장애됨이 없다
(『문종실록』(권13) 문종 2년 4월 戊辰 조)

단종 원년(1452) 12월 : 『동국정운』과 『예부운략』의 한자운을 모두 과거에 사용하도록 함.
議政府據禮曹呈啓 曾奉敎旨 於科擧 用東國正韻 然時未印頒 請依舊用禮部韻(중략) 從之
의정부에서 예조가 올린 계에 의거하여 ‘일찍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과거에서 동국정운을 사용하였으나 이 때에는 미쳐 인쇄하여 나누어 주지 못하였음으로 (예조에서) 청하는 바에 의하여 옛날같이 예부운에 의거하자’고 하였다.(중략) 그대로 따르다
(『단종실록』(권4) 단종 즉위년 12월 壬子 조)

단종 3년(1455) 4월 :『洪武正韻譯訓』 완성
 景泰六年仲春旣望 경태 6년(1455) 중춘(4월) 보름
 (『홍무정운역훈』의 신숙주 서문 간기)

세조 5년(1459) 7월 :『月印釋譜』 편찬(간행).
 天順三年 己卯 七月七日序 (세조의 御製序文 간기)

세조 6년(1460) 6월 :『훈민정음』, 『동국정운』, 『홍무정운역훈』을 과거의 출제서로 함.
  禮曹啓 訓民正音先王御製之書 東國正韻·洪武正韻皆先王撰定之書 吏文又切於事大 請自今文科初場試講三書 依四書五經例給分 終場幷試吏文 依對策例給分 從之
  예조에서 계하기를 ‘『훈민정음』은 선왕이 만드신 책이고 『동국정운』과 『홍무정운역훈』도 모두 선왕께서 정하여 편찬한 책이며 吏文은 또 事大에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과거의 문과에서 初場에는 앞의 세 책을 강론하는 것으로 시험하고 四書와 五經의 예에 의하여 점수를 주며 終場에는 이문을 함께 시험해서 對策의 예에 의거하여 점수를 주겠습니다’라고 하다. 그대로 따르다”
 (『세조실록』 권21, 세조 6년 9월 庚寅 조)

세조 7년(1461) : 刊經都監 설치.

세조 8년(1462) 6월 : 과거에 홍무운을 예부운과 함께 쓰게 함.
 禮曹啓 在先科擧時只用禮部韻 請自今兼用洪武正韻 譯科並試童子習 從之
 예조에서 계하기를 ‘전에는 과거를 볼 때에 예부운(禮部韻)만을 사용하였으나 이제부터는 홍무정운을 겸용하고 역과(譯科)는 동자습(童子習)을 함께 시험하도록 청합니다’라고 하다. 그대로 따르다”
 (『세조실록』 권 28, 세조 8년 6월 癸酉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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