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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序

by 강창석 on Oct 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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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신숙주(申叔舟)

홍무정운역훈1.jpg1. 자료 해설
『洪武正韻』은 明 洪武 8년(1373) 樂韶鳳 등에 의해 편찬된 韻書 즉 중국의 표준 한자음을 규정해놓은 책이다. 한자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세종은 이 欽定 운서를 中國字音을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권위서로 인정하여 신숙주 등에게 한글로 表音(譯訓)하도록 명하였다.

원래 『洪武正韻』에는 反切로만 表音이 되어 있었는데, 신숙주(申叔舟) 등은 反切을 정리해서 31字母를 밝혀내고 韻母音을 살펴서 홍무정운의 반절이 보여주는 음계(이를 正音이라 함)를 한글로 표음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원래의 반절로는 표시되지 않았던 당시의 북방음도 아울러 조사하여 이를 俗音이라고 표시하였다.

이 역훈의 體裁는 『洪武正韻』과 똑같은 16권의 내용에 反切·字解도 그대로 두고서 한글의 표음만 더 첨가한 것인데, 세종 27년(1445)경부터 사업이 시작되어 端宗 3년(1455)에 완성되었다. 그 사이의 경위가 신숙주가 쓴 서문에 밝혀져 있다. 



 

2홍무정운역훈2.jpg. 『洪武正韻譯訓』 序文 번역문

성운학은 가장 깨우치기 어려운 학문이다. 대개 사방의 풍토가 같지 않으면 기(氣)도 이에 따라 다르게 되는데 소리는 기에서 생기는 것이라, 이른바 사성과 칠음, 곧 성과 운이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심약이 사성운보를 지은 이후로 중국 남방음이 섞이어서, 식자들이 이를 근심해 왔으나 역사상 아직 이를 바로잡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명나라 태조 황제께서 성운체계가 어그러지고 순서가 어지러워진 것을 딱하게 여기시어, 유신들에게 한결같이 중원아음으로써 기준을 삼아 홍무정운을 정하라고 명하시니, 홍무정운은 실로 천하 만국이 받들 기준이다. 
  
 우리나라 세종 장헌대왕께서 운학에 뜻을 두시어 깊이 연구하시고 훈민정음 약간자를 창제하시니 사방 만물의 소리가 전할 수 없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사성과 칠음이 제대고 갖추지 않은 바가 없어서, 유독 자운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세종께서는 우리나라가 대대로 중국과 사귀어 왔으나 어음이 통하지 않아 반드시 통역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사실을 비추어 보시고, 무엇보다도 홍무정운을 번역하라고 명령하시었고, 현 예조참의 성삼문과 전농소윤 조변안과, 금산군 지사 김증과, 전행 통례문 봉례항 손수산 및 신숙주 등으로 하여금 옛 문헌을 상고하여 널리 보아 증명하도록 하시고, 수양대군과 계양군 증은 서무ㆍ 출납을 맡도록 하시되, 모두 친히 간여하여 문제를 해결하시어 칠음으로 맞게 하고 사성으로 조정하여 청탁으로도 맞게 하시니, 성모와 운모를 표시하는 내용이 처음으로 바르게 되어 어그러진 곳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어음이 이미 다르고 와전이 역시 심하여, 이에 신등에게 중국의 선생이나 학자한테 물어보아  바로잡도록 하라고 명하시어, 왕래가 7ㆍ8번에 이르렀고 물어본 사람이 몇 사람이 된다. 중국의 수도인 연경(북경)은 만국이 회동하는 곳으로서, 먼 길을 오갈 때에 일찍이 교섭해서 밝혀 보려고 한 사람이 또 적지 않고, 변방이나 이역의 사신과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만나 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이래서 정(正)과 속(俗)과 다르고 같게 변한 것을 다 밝히려고 했다.

  또 중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유학자이면 또 정확한 것을 취하여 무릇 원고를 열 몇번 되풀이하여 애써 고쳐 써서 마침내 8년의 오랜만에 바르게 되어 이지러짐이 없다는 것이 더욱 의심없게 되었다.

  문종 공순대왕께서 세자로 계실때부터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성운 관계 사업에 참여하시더니, 즉위하신 뒤로는 신 등과 전 판관 노삼과, 현 감찰 권인과, 또 부사직 임원준들에게 다시 수정하도록 명령하시었다.
대저 홍무정운은 운을 가지고 합하고 나눈 것은 다 바르게 되었으나 유독 성모만은 순서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감히 가벼이 변경할 수 없어서 그것만 그대고 두고, 운을 표시하는 글자들의 위에 성모를 나타내는 자모를 분규 기입하고, 훈민정음으로 반절을 대신하여 음을 표시하였으며, 그 속음과 두가지 음이 있는 것으로 꼭 알아야 될 것은 해당 글자의 밑에 기입하였다. 또 만일에 이해하기 어려운 음이 있으면 간단히 주를 달고 그 예를 보이었으며, 또 세종께서 지으신 사성통고를 따로 첫머리에 붙이고 다시 범례를 실어서 기준이 되도록 하였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단종)께서 즉위하신 다음, 이 책을 간행하여 널리 펴도록 자주 명하시고, 신에게는 일찍이 선왕의 명을 받은 바가 있으니 서를 지어 앞 뒤 사실을 기록하라고 명하시었다. 이에 간절히 생각하건대 음운은 운도 상에서 옆으로 성모가 배열되고 종으로 운모가 배열되는데, 운모와 사성에 관한 고찰은 남조(南朝)에서 시작되었고, 성모에 관한 고찰은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후 시작되었으나, 송나라 학자들이 운도를 만들음에 이르러 종ㆍ횡으로 배열된 성모와 운모가 비로소 결합되어 자음(字音)을 표기하게 되었다. 성모는 36자모로 표시하나, 설상음 4모와 순경음의 차청을 표시하는 1모는 세상에서 쓰이지 않음(즉 발음되지 않음)이 이미 오래고, 또 선배가 이미 바꾼 것이 있으니, 이것이 억지로 (36)자모를 존속시켜 옛것에 사로잡혀서는 안될 까닭이다.

  평ㆍ상ㆍ거ㆍ입을 4성이라고 하나, 전탁자들의 평성자가 차청음으로 가깝게 되고, (전탁자의) 상ㆍ거ㆍ입성자들이 전청에 가깝게 되어 세상에서의 쓰임이 이와 같다. 그러나 역시 이렇게까지 변화한 까닭은 알지 못하고 있다. 또 처음이 있고 끝이 있어서만 세속(世俗)에서 대체로 종성을 쓰지 않으니 매우 까닭이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고의 운서나 황공소의 운호가 입성을 역시 종성으로 쓰지 않고 있으니 무슨 까닭이냐? 이와 같은 것이 하나 만이 아니니, 이것이 또 의심스러운 것이다.

  (중국을) 오가며 바로잡은 것이 이미 많으나, 마침내 운학에 정통한 사람을 만나서 성모(紐)와 운모(攝)등을 고르게 분별하는 요령을 터득치 못했으며, 다만 말과 책 읽는 틈에 성모(청탁)와 운모(개합)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이른바 가장 어려운 운학의 이치를 밝히고자 하니, 이것이 곧 여러 해를 고생하면서 노력하여 겨우 얻은 까닭이다.

신 등이 학문이 얕고 학식이 모자라서 일찍이 깊은 이치를 연구하고 깊은 이치를 밝히어 임금님의 뜻을 현양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늘이 내신 성인이신 세종대왕께서 밝고 넓게 아시지 못하는 바가 없으셔서 성운학의 근원도 밝게 연구하시어 (우리가 밝히지 못한 바를) 헤아리시고 결정해 주심에 힘입어서, 성모(칠음)와 운모(사성)를 배열한 하나의 경(經), 하나의 위(緯)로 하여금 마침내 바름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 결과 우리 동방에서 천ㆍ백년 동안 아직 알지 못하던 바를 열흘이 못되어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진실로 되풀이하여 깊이 생각한 다음 이를 깨우칠 수 있다면, 성운학인들 어찌 연구하기가 어렵겠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범음(梵音)은 중국에서 행하되, 공자(夫子)의 경서가 발제하(인도와 중국 국경의 강이름)를 넘어가 행하여지지 않는 것은 글자로 하고 소리로 안해서라고 하는데, 대저 소리가 있으면 이에 따르는 글자가 있는 것이어늘 어찌 소리없는 글자가 있겠는가? 이제 훈민정음으로 이를 번역하니(즉 注音하니) 성모와 운무가 잘 들어 맞아 제대로 자음(字音)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니, 음화ㆍ유격ㆍ정절ㆍ회절법과 같은 번거롭고 수고로운 짓을 안해도, 입으로 발음하면 소리를 얻되,(쓰여진 글자의 음과) 조금도 차이가 안 날 것이니, 또 무엇 때문에 풍토의 같지 않음을 걱정하겠는가?

  우리 열성(세종ㆍ문종)의 제작의 묘함이 진미진선하시어 구금에 뛰어나시고, 또 전하(단종)께서 조상의 업적을 이으신 아름다움이 또한 조상의 공에 빛이 있게 하는 것이다.

경태 육년 음 4월 16일 수충협책 정난공신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 경연참찬관 겸 상서윤 수문전 직제학 지제교충춘추관 겸 판봉상시사 지이조사 내직사준원사 신 신 숙주는 두 손 모으고 머리를 숙여 공손히 책머리에 씀. 

홍무정운역훈3.jpg3. 『洪武正韻譯訓』 序文 원문

聲韻之學 最爲難精 盖四方風土不同 而氣亦從之 聲生於氣者也 故所謂四聲七音 隨方而異宜 自沈約著譜 雜以南音 有識病之 而歷代末有釐正之者 洪惟皇明太祖高皇帝 愍其乖舛失倫 命儒臣 一以中原雅音 定爲洪武正韻 實是天下萬國所宗
我世宗莊憲大王 留意韻學 窮硏底蘊 創制訓民正音若干字 四方萬物之聲 無不可傳 吾東邦之士 始知四聲七音 自無所不具 非特字韻而已也. 於是以吾東國世事中華 而語音不通 必賴傳譯 首命譯洪武正韻 令今禮曹 議臣成三問 典農少尹臣曹變安 知金山郡事臣金曾 前行通禮門 奉禮郞臣孫壽山 及臣叔舟等 稽古證閱 首陽大君臣諱 桂陽君臣 監掌出納 而悉親臨課定 犀以七音 調以四聲 諧之以淸濁 縱衡經緯 始正罔缺
然語音旣異 傳訛亦甚 乃命臣等 就正中國之先生學士 往來至于七八 所與質之者若干人 燕都 爲萬國會同之地 而其往返道途之遠 所嘗與周旋講明者 又爲不少以至殊方異域之使 釋老卒伍之微 莫不與之相接 以盡正俗異同之變 且天子之使 至國而儒者 則又取正焉 凡謄十餘藁 辛勤反復竟八載之久 而向之正罔缺者 似益無疑 文宗恭順大王 自吊邸 以聖輔聖 參定聲韻 及嗣寶位 命臣等及前判官臣魯參 今監察臣權引副司直臣任元濬 重加讐校
夫洪武韻 用韻倂析 悉就於正 而獨七音先後不由其序 然不敢輕有變更 但因其舊 而分入字母於諸韻各字之首 用訓民正音以代反切 其俗音及兩用之音 又不可以不知 則分注本字之下 若又有難通者 則略加注釋 以示其例 且以世宗所定四聲通攷 別附之頭面 復著凡例爲之指南
恭惟聖卽位 命印頒 以廣其傳 以臣嘗受命於先王 命作序 以識顚末 切惟音韻衡有七音 縱有四聲 四聲肇於江左 七音起於西域至于宋儒 作譜而經緯 始合爲一 七音爲三十六字母 而舌上四母 唇輕次淸一母 世之不用已久 次先輩已有變之者 此不可强存而泥古也 四聲爲平上去入 而全濁之字平聲 近於次淸 上去入 近於全淸 世之所用如此 然亦不知其所以至此也. 且有始有終 以成一字之音 理之必然 而獨於入聲 世俗率不用終聲 甚無謂也.
蒙古韻 與黃公紹韻會 入聲亦不用終聲 何耶 如是者不一 此又可疑者也
往復就正 旣多 而竟未得一遇精通韻學者 以辨調諧紐攝之妙 特因其言語讀誦之餘 遡求淸濁開闔之源 而欲精夫所爲最難者 此所以辛勤歷久 而僅得者也
臣等 學淺識庸 會不能鉤探至 顯揚聖謨 尙賴我世宗大王天縱之聖高明博達 無所不至 悉究聲韻源委 而斟酌裁定之 使七音四聲一經一緯 竟歸于正 吾東方千百載 所未知者 可不浹旬而學 苟能沈潛反復有得乎是 則聲韻之學 豈難精哉
古人謂梵音行於中國 而吾夫子之經 不能過跋提河者 而字不以聲也 夫有聲 乃有字 寧有無聲之字耶 今以訓民正音譯之 聲與韻諧不待音和 類隔正切回切之繁且勞 而擧口得音不差毫釐 亦何患乎風土之不同哉 我列聖製作之妙 盡美盡善 超出古今 而殿下繼述之懿又有光於前烈矣
景泰六年仲春旣望 輸忠協策靖難功臣 通政大夫 承政院都承旨經 贊官 兼尙瑞尹 修文殿直提學 知製敎 忠春秋館兼判奉常時事 知吏曹事 內直司樽院事 臣申叔舟拜手稽首敬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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