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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崔世珍 : 1465?∼1542)

by 강창석 on Nov 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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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ong.jpg최세진(崔世珍 : 1465?∼1542) 은 중인(中人)계급의 역관(譯官) 출신으로 집안이 한미(寒微)하여 그의 가계(家系)와 생애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따라서 그의 출생 연도도 세조 11년경(1465년)으로 추정할 뿐이며 그의 가계도 당시 사역원 (司譯院) 정(正)이었던 최발(崔潑)이 그의 부친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괴산(槐山) 최씨로서 자(字)를 공서(公瑞)라 하고 중종 37년(1542년) 사망할 때에는 중추부(中樞府)의 동지사(同知事, 정2품)까지 승진하였다.

역관의 집안이었으므로 어려서 사역원에 입학하여 중국어를 학습하고 한어(漢語) 역관으로 활약하였으며 중국에 보내는 사대문서의 글인 한이문(漢吏文)에도 통달하였다. 그리하여 사신(使臣)의 접대와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의 작성 등 당시 명(明)과의 외교관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이었다. 여러 차례 중국을 다녀오면서 그곳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으며 스스로도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하여 문신들과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는데 중인계급의 역관임에도 불구하고 재산이 많고 중국의 선진문물을 즐기는 사실로부터 많은 유생들의 시기를 받았으며 성품이 탐욕스럽다고 여러 차례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다. 그의 생애의 대부분은 이러한 문신들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으며 환로(宦路)도 순탄치 않아서 여러번 이들의 탄핵으로 인하여 벼슬이 떨어지거나 강등되는 수모를 받아야 했다.

다만 중종(中宗)의 총애를 받으면서 신분의 벽을 넘어 중국과의 사대외교를 전담하고 한어 및 한이문 교육에 힘쓸 수가 있었다. 이 때의 중국어 교육을 위한 학습서로서 중종 12년(1517)에 〈사성통해〉를 저술하였고 이보다 2∼3년 앞서 〈노걸대(老乞大)〉〈박통사(朴通事)〉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는 한어교재를 번역하면서 표음문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이를 중국어 학습서만이 아니라 한자학습서에도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중종 22년에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저작하였으며 여기에 부재한 '언문자모'는 한글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종 32년(1537년)에 〈운회옥편(韻會玉篇)〉을 저술 하였고 〈소학편몽(小學便蒙)〉도 편찬하였다.

중종 35년(1540년)경부터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 때에 그의 나이는 이미 75세를 넘었다. 중종 37년(1542년) 2월 10일에 최세진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 때 그의 벼슬은 상술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다. 실록에 그의 죽음을 기재하면서 "최세진은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더욱이 한어(漢語)에 정통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서는 모든 사대에 관한 이문 (吏文)을 맡아보았고 벼슬이 2품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언해효경(諺解孝經)〉과 〈훈몽자회〉〈이문집람(吏文輯覽)〉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라는 평을 남겼다. 출신은 비록 한미하였지만 오로지 학문에 몰두하여 입신출세한 의지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세진의 업적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크게 둘로 나누어 한어의 연구와 노력이 그 첫째이고 한자음 연구와 한글의 보급이 그 다음이었다. 그는 사역원의 한어학습교재를 정비하였으며, 그가 훈민정음으로 〈노걸대〉〈박통사〉를 번역한 방법은 훗날 사역원의 다른 외국어 학습교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모든 역학서들이 훈민정음으로 발음을 표기하고 그 뜻을 언해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하여 외국어 학습에 괄목할 발전이 있었고 사역원의 역학서(譯學書)가 모두 정비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국어와 해당 외국어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인 역학서는 최세진에 의하여 당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으로 발음이 전사될 수 있었다.

둘째로 최세진은 한자음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 한자음, 즉 동음(東音)을 정리 하였으며 이를 〈훈몽자회〉로 편찬하여 널리 교육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 '언문자모'를 부재하여 한글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훈민정음을 제정할 때에 한자음 정리를 염두에 두고 문자를 제정하였기 때문에 〈동국정운(東國正韻)〉 이후 한자음 표기는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세진은 한자의 한어음 (漢語音)과 동음(東音)을 구별하여 우리 한자음을 정비하였다. '언문자모'는 한글 자모의 순서를 정리하여 정착시켰으며 자모의 명칭을 정하였고 이두로 신문자 사용법을 설명하여 한글을 보급하는데 기여하였다. 이것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 사용의 전체적인 검토와 재평가를 시도한 것으로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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