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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成三問, 1418-1456 太宗 18년 - 世祖 2년)

by 姜昶錫 on Nov 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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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1.jpg자(字)는 근보(槿甫) 눌옹(訥翁) 호(號)는 매죽헌(梅竹軒)이며 본관(本貫)은 창녕(昌寧) 부(父)는 도총관(都摠管) 승(勝)이고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이다. 세종(世宗) 20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하위지(河緯地)와 함께 세종(世宗) 29년 문과중시(文科中試)에 장원(壯元)했다.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에서 집현전(集賢殿) 수찬(修撰)을 거쳐 왕명(王命)으로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예기대문언독(禮記大文諺讀)을 편찬(編纂) 하였으며 경정관(逕庭官)이 되어 항상 세종(世宗)을 가까이에서 모셔 총애(寵愛)를 받았다.

세종 24년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하위지(河緯地), 이석정(李石亭) 등과 더불어 삼각산(三角山) 진관사(津管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했고 정음청(正音廳)에서 정인지(鄭麟趾),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강희안(姜希顔) 이개(李塏)등과 함께 당시(當時) 요동(遼東)에 유배(流配) 되어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 황찬(黃瓚)에게 13번(十三番)이나 래주(來注)하면서 음운(音韻)을 질의하고 다시 명(明)나라에 여러번 건너가서 음운(音韻)과 교장(敎場)의 제도(制度)를 연구(硏究) 그 정확(正確)을 기(期)한 끝에 세종(世宗) 28년(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頒布)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종(世宗)이 만년(晩年)에 숙환으로 온천(溫泉)에 갈때도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恒), 이개(李塏) 등과 함께 항상(恒常) 배종 했다.

단종(端宗) 1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김종서(金宗瑞)를 죽이고 집현전(集賢殿)신하들에게 정난공신(靖難功臣)의 호(號)를 내리자 모두들 순번(順番)으로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었으나 이를 수치(羞恥)로 여겨 혼자 열지 않았다.

단종(端宗) 3년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세조(世祖)가 단종(斷種)을 내쫓고 왕위(王位)에 오르자 국새(國璽)를 않고 통곡 했으며 다음해 좌부승지(左副承旨)로서 아버지 승(勝) 박팽년(朴彭年)등과 같이 단종(斷種)의 복위(復位)를 협의(協議) 4월 명나라 사신(使臣) 송별연회석상(送別宴會席上)에서 운검(雲劒)을 쥐게 된 아버지와 유응부(兪應孚)가 세조(世祖)를 죽이고 이어서 한명회(韓明澮) 권람(權擥) 정인지(鄭麟趾)등 일파(一派)를 없애기로 했으나 당일(當日) 운검(雲劒)을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후일(後日)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에 같은 모의(謀議)에 가담했던 김질(金瓆)이 성사(成事)가 안될 것을 우려하여 밀고(密告)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 등과 함께 체포 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거열(居烈)의 극형(極刑)을 받았다.

이에 부(父)인 승(勝)도 주모자(主謀者)로 극형(極刑)을 받았고 삼빙(三聘), 삼고(三顧), 삼성(三省)의 세 동생(同生)과 맹담(孟澹), 맹년(孟年), 맹종(孟終)과 갓난아기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殺害) 되었다.

숙종 2년 홍주(洪州) 노은동(魯恩洞)에 있는 그의 옛집 옆에 세워진 녹운서원(綠雲書院), 숙종 7년 육신(六臣) 묘(墓)가 있는 노량진(露梁津)에 세워진 민절서원(愍節書院)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의성(義城)의 학산(鶴山) 충열사(忠烈祠) 창영(昌寧)의 물계(勿溪) 세덕사(世德祠) 연산의 충곡서원(忠谷書院),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 등에 육신(六臣)이 함께 제향(祭享)한다. 영조(英祖) 34년에는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 시호(諡號)는 충문(忠文)이다. 능서(能書 글씨를 잘 썼다)

선생(先生)의 시(時)는 많이 전(傳)하나 병자(丙子)년 6월 8일 수레에 실려 형장(刑場)으로 끌려 갈 때 대여섯 살밖에 안된 그의 딸이 따라오며 울부짖으니, 그는 뒤돌아 보며 『사내아이는 다 죽어도 너만은 죽지 않으리라』하고는 목에 매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수레가 잠시 머물렀을 때 그의 종이 울면서 술을 올리니 몸을 숙여 받아 마시고 그의 충절(忠節)을 다음과 같이 시(詩)로 나타냈다.

식인지식의인의 食人之食衣人衣
소지평생막유위 素志平生莫有違
일사고지충의재 一死固知忠義在
현릉송백몽의의 顯陵松栢夢依依

(역 譯)
임의 밥 임의 옷을 먹고 입으며
일평생 먹은 마음 변할 줄이 있으랴
이 죽음이 충과 의를 위함이기에
현릉(문종의 능) 푸른 송백꿈 속에서도 못잊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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