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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퍼셀
퍼셀, 헨리 Henry Purcell (1659~1695)

purcell.jpg음악가의 가계에서 태어나 1669년 왕실교회 소년성가대에 들어가 성가대장 쿠크와 P.험프리에게 유럽의 새로운 음악 양식을 배웠다. 1673년 변성기로 성가대를 떠나 왕실 악기조율사 조수로 있다가 이듬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오르간조율사가 되었다.

1677년 M.록이 사망하자 그 후임으로 약관 18세의 나이로 왕실 현악합주단 상임작곡가가 되어 가곡과 판타지아를 작곡하였다. 이 작품들은 전통적 대위법을 구사하여 16세기말~17세기 영국 최대의 환타지아 명작으로 꼽힌다. 1679년 J.블로우에 이어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680년 극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찰스2세의 런던 귀환을 축하하는 환영가와 《테오도시우스》를 작곡하였다.

이후 왕실소속의 음악가 되어 활동을 계속하고, 1689년 친구가 경영하는 첼시여학교를 위해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다수의 교회음악과 기악곡과 세미오페라 《요정의 여왕》《템페르트》 《아서왕》 《인도의 여왕》 등을 작곡하여 영국 바로크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1695년 36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존 블로의 뒤를 이어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로 일했었는데, 그는 이 직책을 얻음으로써 안정된 급료와 성앤스가에 있는 임대주택을 제공받게 되었다.

그는 1695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장례식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고, 유해는 오르간이 있는 사원의 북쪽측랑에 묻혔다. 그가 묻힌 자리에는 그의 이름을 새긴 대리석 명패가 붙어 있는데, 이 곳에는 그를 기리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1659년경, 퍼셀이 런던에서 태어날 무렵은 바로크음악이 바하나 헨델에 의해 정점에 이르기 전이었다. 그러므로 영국음악에 미친 퍼셀의 영향은 바하나 헨델 못지 않게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했다. 퍼셀이 30대에 세상을 떠나자, 영국은 그가 시작한 음악 발전의 길을 이어나갈 마땅한 인물이 없어 긴 공백기를 맞기도 했을 정도다.퍼셀은 양친이 가수와 작곡가여서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으며, 소년 시절에 이미 작곡을 시작하였다. 이미 8살 때, 조숙한 퍼셀은 가곡을 썼었는데, 이것은 플레이 포드 출판사의 [음악의 벗]에 실렸다. 당시 그는 왕립 교회 합창단원이었다.

퍼셀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변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왕립악단 악기관리인이던 존 힌제스턴의 조수가 되었다. 이 일은 무보수였으나, 퍼셀은 장사하는 것보다는 하프시코드 조율이나 오보에 닦는 일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꾸준한 노력 덕택에 그는 1년도 안되어 오르간 조율사 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악보 필경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1677년 매수로그가 죽자 퍼셀은 상임작곡가의 대역에 들어서게 됐다.

그는 앤섬(anthem)의 작곡을 의뢰받았는데, 당시 영국 교회에서 불리던 성가인 앤섬은 교회 음악 작곡가들만이 쓸 수 있었다.그 밖에도 그의 가곡 및 왕립 바이올린악단의 작품이 있지만, 남아 있지는 않다. 2년 뒤인 20살 때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수석 오르가니스트가 된다. 이 지위는 상당한 것인데, 그는 당시 정규적인 급료 이외에 교회 부근에 사택을 제공받기도 했다. 1년 후 결혼한 그는 아이를 둘 낳았는데, 그 중 에드워드는 나중에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가 되었다. 이 후 몇 년간 퍼셀의 활동은 눈부셨다. 찰스 2세는 퍼셀에게 많은 임무를 맡겼으며, 차기 군주 제임스 2세와 월리엄 3세 및 메리 여왕도 계속해서 그에게 임무를 주었다. 그의 주요임무는 오르간제작 및 궁정의 악기관리였는데, 1683년에 힌제스턴이 죽자 그가 이 직책을 계승한것이다.

그의 작품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며, 외국의 음악양식과 엘리자베스 시대의 본격적 다성음악의 요소를 융합, 동화시켜 영국음악에 새로운 양식을 전개하였다. 또한 헨델, 브리튼, T.티펫 등의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시대 최대의 음악가로, 그 음악의 참신성은 20세기에 와서 재평가되고 있다.

그해 초, 퍼셀은 [트리오 소나타 제1권]을 출간했는데, 그 폭이 넓어졌을 뿐아니라 길이도 길어졌다. 그는 실내악과 부수 음악, 앤섬, 가곡, 전래음악 등도 많이 작곡했다. 이러던 중, 퍼셀은 과로한 탓으로 결국 건강이 나빠졌는데, 텔레만이 과중한 업무에도 잘 견디어 86세까지 살았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하겠다. 퍼셀은 모든 종교행사와 주요 국가행사, 기념일 및 축일, 기타 공공행사 때 연주할 새로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써주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왕립바이올린악단에도 신작을 계속 써주어야 했고, 늘어나는 가곡에 대한 수요도 채워야 했다. 또한 그는 50여곡에 달하는 부수음악을 썼고, 다수의 오페라와 수많은 하프시코드 음악도 썼다.

하프시코드 음악은 모음곡과 춤곡의 형태로 씌었는데, 이 작품들은 건반악기로부터 부수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었다. 그러나 퍼셀은 이 곡들을 모두 연주용으로 작곡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집안 사람들을 위해 쓴 것도 많다. 이 중에서 어떤 작품은 그가 사망한 후 미망인이 출판한 것도 있다.대표작품으로 세미오페라 《요정의 여왕》 《템페르트》 《아서왕》 《인도의 여왕》 등 40곡에 이르고 유일한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와 이외에 다수의 성악곡, 기악곡, 앤섬, 버스 앤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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