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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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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드보르작

Dvorak_image_01.jpg유모레스크
유모레스크(Humoreque)란 말은 원래, 19세기 기악곡에 붙여진 명칭이지만 유머가 있고 코믹한 성격을 가진 곡을 말합니다.

이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는 1894년에 작곡한 8곡으로 꾸며진 피아노 소품집입니다. 그 중에서 7번째 내림 사장조 4분의 2박자 겹세도막형식의 이 곡이 가장 유명하며, 바이올린 독주곡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율동적인 가벼운 주부와 선율적인 중간부로 구성된 이 곡은 유머스러운 곡이라기보다는 한가닥 애수의 정감이 흐르고 있는 대단히 서정적인 곡입니다.

드보르작(Dvorak Antonin ; 1841.9.8~1904.5.1)
안토닌 드보르작은 중부 유럽의 동쪽에 위치한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부터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몰다우강 기슭에 호젓이 자리잡은 네라호제베스라는 작은 마을에 정육점과 여관업을 겸업하는 집안에서, 지금부터 약 150년 전인 1841년 9월 8일 태어났습니다. 말이 수육점과 여관업이지 워낙 소규모로 운영하는 장사인데다가 드보르작 이후 연달아 8형제가 태어나서 대식구가 되자 드보르작의 형제들은 기아에 가까우리 만큼 헐벗고 굶주림 속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했지만 울창한 원시림을 벗삼아 자연 속에서 소박한 풍습과 체코 특유의 민요를 접하며 성장한 드보르작은 집시들이 즐겨 다루던 바이올린을 취미 로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입학과 동시에 선생님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드보르작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집을 들려가던 길손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받던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솜씨는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어 마을의 축제나 경사가 있을 때면 으례히 연주를 하곤 하였습니다.

드보르작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챈 그의 삼촌은 드보르작을 오르간 연주가인 안토닌 리만에게 소개하여 리만 밑에서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기초 음악 이론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보르작의 음악가로서의 생애가 시작되는 것은 그의 나이 열 여섯살 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입니다. 바이올린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으로 2년 간의 학업을 마친 드보르작은 사설 관현악단의 비올라 주자로 취직을 했지만 봉급이 워낙 적어 계속되는 가난을 면치 못하였지만,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작곡을 향한 마음은 활화산처럼 타올랐으며, 체코의 선구자적인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가 지휘대에서 그의 자작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지휘할 때,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던 드보르작은 충격적인 자극을 받아 작곡에로의 집념은 날로 더해 갔습니다.

1862년 프라하의 국민극장 소속 관현악단이 발족되자 드보르작도 이 가극장 소속의 관현악단 멤버가 되어 1871년까지 10여년간을 전속단원으로 근무하며, 작곡공부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30세가 되어 비올라 주자직을 그만두고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는 한편 개인교수를 하며,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의 고정급여가 생기며, 생활 사정도 조금 나아지게 되자 1873년 드보르작은 마음 착한 알토 가수인 안나 케르마코바(Anna Cermakova)를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또한 이 해는 그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시기로 행복한 결혼과 함께 오랫동안 동경하 여 왔던 작곡계에 데뷔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는 마침내 스메타나 이후 체코가 낳은 최대의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향토적인 선율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멜로디와 화성과 리듬의 신선한 맛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작곡가로 나서기는 32세 때부터인데, 애국적인 소재를 취급한 칸타타에 그 나라의 국민 음악의 이디엄을 자유롭게 구사한 것이 성공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브람스의 인정을 받았는데, 그 때 브람스는 그를 인정하여 국가에서 주는 연금을 추천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특징있는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으며, 얼마 후 영국과 미국 등지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884년에 그는 영국에 초빙되어 자작의 작품과 스메타나 등의 작품을 연주하여 크게 성공했습니다. 1892년, 그는 미국에 초빙되어 뉴욕 국민 음악원장에 취임하여 1895년까지 있으면서 저명한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하여 크게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귀국하여 다시 프라하 음악원 작곡과 교수로 있으면서 민족적인 교향곡과 오페라 등을 작곡하여 이름을 떨쳤습니다. 1901년, 그는 프라하 음악원장이 되어 교육자로서도 공헌한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처음에 베토벤의 음악 구성에 입각한 작품을 썼고, 다음은 브람스의 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9개의 교향곡를 비롯하여 10개의 오페라와 많은 오케스트라곡, 실내악, 가곡 등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국민주의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서 스메타나와 함께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 친 저명한 작곡가 중의 하나이며,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어도 행복스런 미래의 희망을 잃지 않는 건전한 이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산에 대한 경건한 태도, 자연과 조국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정열 등이 그 의 작품의 기반이 되었으며, 소박하고, 단순하며, 순진한 천성을 균형잡힌 고전 적 구성과 풍부한 음빛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정적이며 민족적인 선율과 리듬에 의해서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 그의 음악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주요 작품
교향곡 ; '미국', '성 루드밀라', '미사', '레퀴엠', '유모레스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터부터 e단조', '2 악장(라르고)', '4 악장(알레그로 콘 푸오코)', '첼로 교향곡', '쟈코 뱅', '자연, 삶, 사랑'
오페라 ; '루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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