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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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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요

사막의 한

by 강창석 on Jan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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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소리, 唱) 고복수
작사 김능인
작곡 손목인
발표 1929
고복수11.jpg사막의 恨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1929)

자고 나도 사막의 길 꿈속에도 사막의 길
사막은 영원의 길 고달픈 나그네 길
낙타 등에 꿈을 싣고 사막을 걸어가면
황혼의 지평선에 석양도 애달퍼라.

저 언덕 넘어갈까 끝없는 사막의 길
노을마저 지면은 둘 곳 없는 이 내 몸
떠나올 때 느끼며 눈물 뿌린 그대는
오늘밤 어느 곳에 무슨 꿈을 꾸는고.

사막에 달이 뜨면 천지도 황막한데
끝없는 지평선도 안개 속에 쌓이면
낙타도 고향 그려 긴 한숨만 쉬고
새벽이슬 촉촉히 옷깃을 적시우네.

이 노래는 오케 레코드사가 발매한 高福壽(고복수)의 히트곡이다. 그의 대표곡 「타향살이」와 함께 녹음되었고, 高福壽의 음반 중에서 최고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작사자 金陵人(김능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본명은 昇應順(승응순)이다. 동요 창작에 관심이 있었고, 잠시 문단활동도 하였다. 오케레코드 창설과 더불어 문예부장으로 발탁이 되었다.

高福壽는 1940년 봄에 조직된 반도악극좌의 무대공연을 통해서 黃琴心(황금심)과 사랑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두 사람의 나이는 무려 10년의 차이가 있었고, 이 때문에 黃琴心의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은 모든 반대를 뿌리치고 혼인하게 되었다. 이후 부부는 「고복수와 그 악극단」, 「조향 악극단」, 「백조 가극단」 등의 고정 멤버로 항상 함께 다닐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高福壽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北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에서 高福壽는 극적으로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후 육군 정훈공작대에 지원하여 軍위문 연예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7월, 高福壽는 서울의 「시공관」에서 은퇴 공연을 열었다. 高福壽는 은퇴 후 4·19혁명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한 모금 운동의 일환으로 가요 현상 모집과 신인 선발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은퇴 이후 高福壽는 손대는 사업마다 모두 실패하고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 말년의 高福壽는 몹시 고달픈 삶을 살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각종 전집물을 판매하러 온종일 거리를 헤매다니는 서적 외판원까지 했을 정도였다. 高福壽는 1972년 2월에 세상을 떠났고, 아내 黃琴心은 2001년에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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