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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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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연합뉴스
18세기 바람과 그에 편승한 정조(正祖) 붐은 급기야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듯하던 그의 본명까지 각광받게 하고 있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MBC 대하드라마 '이산'은 그의 본명을 타이틀 롤로 삼았다.

정조의 본명은 '李<示+示>'. 이를 드라마는 '이산'이라 읽었으며, 실상 이것이 현재의 가장 일반적인 표기라 할 수 있다. '李'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왕실의 성씨를 말함이니 '산(示+示)'이 바로 그의 이름이다. 이 글자는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거의 쓰임이 없는 글자다.

이처럼 사용빈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한자로 이름을 삼는 까닭은 피휘(避諱) 때문. 피휘란 신성한 글자의 사용을 금기시하는 전통을 말하는데, 그 대상은 다양하지만 가장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해당 왕조의 역대 군주나 부모-조부모의 이름이었다.

이 피휘 문제 때문에 전통시대 지식인들이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서로가 처음 인사를 나눌 때면 반드시 상대방 부모와 조부모의 휘(諱.이름)를 먼저 확인해야만 했다.

조선시대 군주는 대체로 외자 이름을 선호하고, 나아가 그런 외자가 좀처럼 쓰이지 않는 글자인 까닭은 이런 피휘에서 말미암았다. 사용빈도가 높은 글자를 이름으로 쓴다면, 그 글자는 공문서, 사문서는 물론이고, 입에조차 올리지 못하는데, 그에 따른 생활 불편이 이만저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의 이름 '示+示'이란 글자를 '산'이라고 읽는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옥편이 그렇게 발음 기호를 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시중 옥편은 그렇게 읽었을까?

지금의 시중 옥편 편찬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표준격은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시대에 황제의 명령으로 편찬되었다 해서 이름까지 '강희자전'(康熙字典)인 사전이다. 하지만 국내 옥편계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에 의하면, 국내 옥편으로 이 강희자전을 직접 모델로 삼은 경우는 드물고, 거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발간된 옥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어떻든 이 강희자전을 보면 '示+示'이란 글자를 '오집하'(午集下)의 시(示) 부수에 포함시켜 표제항목으로 제시하면서, 당운(唐韻)과 집운(集韻)이라는 앞선 시대 운서(韻書)를 인용해 "蘇(소)와 관(貫)의 반절(反切)이며 '算'(산)과 같이 발음한다"고 했다.

이에 의한다면 '示+示' 글자는 '산' 정도로 발음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글자를 이렇게 발음하는 전통은 후한시대 중기 때인 서기 100년 허신(許愼)이란 경학자이자 음운학자가 완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사전에 이미 나타나 있는데 이곳에서도 발음을 '讀若算'(독약산), 즉 '算'이라는 글자처럼 읽는다고 소개했다.

그 의미에 대해 설문해자는 "明視以算之(명시이산지)" 곧, 밝게 살펴서 헤아린다고 풀었다. 한마디로 잘 살핀다는 뜻이다.

한데 문제는 '示+示' 글자를 조선에서는 '산'이라고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무엇보다 본명이 '示+示'인 바로 그 임금 정조가 재위하던 시대에 그의 명령으로 규장각이란 학술 아카데미에서 편찬해 완성한 사전에서도 이 글자를 결코 '산'이라 발음하지 않았다.

정조가 사망하던 바로 그 해인 1800년에 완성된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과 그 색인집으로 거의 동시에 나온 '전운옥편'(全韻玉篇)을 보면 이 글자를 '어휘'(御諱) 즉, 임금님의 이름으로 사용을 피해야 하는 글자라고 규정하면서 그 한글 음을 '셩'이라고 달아놓았다.

'규장전운'이란 타이틀 앞에 붙은 '어정'(御定)이란 임금이 정한 것이라는 의미로, 이 발음사전이 다름 아닌 당시의 군주 정조에 명령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고, 그것을 정조 자신이 감수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구한말-식민지시대 어문학자인 지석영(池錫永.1855-1935) 또한 '자전석요'(字典釋要)라는 한자 사전에서 이 글자 발음을 '셩'이라고 했다.

한문학자 남현희씨는 최근 정조 어록집인 '일득록'(日得錄)을 역주한 단행본(문자향 펴냄)을 출간하면서 부친 그 서문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복모음의 단모음화를 고려한다 해도 정조의 본명은 '산'이 아니라 '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조선시대 임금 이름이야 어차피 거의 쓰이지 않았을 터인데 무슨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기(禮記) 중 자잘한 생활 예절을 다룬 곡례 상(曲禮上)에서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은 이름을 대고, 임금 앞에서 신하는 이름을 댄다"(父前子名, 君前臣名)고 했다.

이에 의해 정조 또한 할아버지 영조나 아버지 사도세자, 어머니 혜경궁 홍씨 등등 앞에서는 반드시 이름을 대어야 했으며, 특히 선대 왕들을 제사지내는 제문에서도 반드시 이름을 밝혀야만 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 영조가 정조를 부를 때도 틀림없이 "셩아" 라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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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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