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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칼럼
2006.10.29 08:18

'한글 험담'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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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고종석
'한글 험담' 두 가지


고종석, 한겨레신문 [사설칼럼], 1998. 11. 10. 火

한글은 우리 민족 고유 문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10월 9일은 한글의 생일이다. 문자의 제정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민족은 지구 위에서 한국인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한글에 대한 축복이랄 수는 없다. 이 유별난 관행에는 우리 언어와 문자가 겪어온 시련의 그림자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러나 한글의 고된 역사나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한글에 대한 험담 몇 마디다.

첫째는 `한글'이라는 말과 `한국어'라는 말의 혼동에 관한 것. 많은 사람들이 `한글'이라는 말을 `한국어'의 의미로 사용한다. 한글날이 되면 으레 “한글을 다듬고 가꾸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한글'이라는 말로 가리키는 것은 대체로 `한국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한글판으로 읽었다”고 말할 때도, 그 `한글판'이 뜻하는 것은 `한국어판'이다. 이들 경우의 `한글'이라는 말은 `한국어'라는 말로 고쳐야 옳다. 한글은 한국어를 적는 문자체계일 뿐이므로. 다만, 외래어나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를 `한글'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이해할 만하다. 현대 한국어의 서기체계에서 고유어는 한글로만 표기되니 말이다. `한글 이름'이라든지 `한글 지명'이라든지 할 때의 `한글'이 그 예다.

그러나 나 같으면 이런 경우에도 `한글'이라는 말 대신에 `고유어'라든지 `토박이말'이라는 말을 사용하겠다. 또 이 경우에 `한글'이라는 말을 사용하더라도, 이 `한글'은 1446년에 세종이 반포한 뒤 긴 세월 동안 다듬어진 문자체계로서의 `한글'과는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물론, 말의 쓰임새에 대한 최종적 심판관은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다. 사람들 대다수가 `한글'이라는 말을 `한국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걸 금지할 도리는 없다. 그래도 나는 이 혼동이 늘 마음에 걸린다. 이런 혼동이 생긴 것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서 한국어와 한글이 워낙 견고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한국어와 한글의 결합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국어를 외국 문자로 표기할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는 로마글자를 사용해 한국어를 표기할 수도 있다. 고대 한국인들은 한자를 사용해서 한국어를 표기하는 이두 향찰 구결 따위의 방식을 생각해냈고, 또 그것들을 실제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글을 사용해서 일본어나 스페인어를 표기할 수도 있다. 한국어도 한글도 우리에게는 다 소중하지만, 그 둘 가운데 더 소중한 것은 말할 나위 없이 한국어다.

둘째는 한글을 둘러싼 신화에 관한 것. 우선 한글의 창제를 세종의 애민정신과 관련시키는 신화가 있다. 세종이 여러 점에서 훌륭한 군주이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의 창제가 크게 보면 백성 세계의 의식 성장과 정권 쪽의 민중 통제 의지가 맞물려 이뤄졌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한국 한자음을 되도록 중국음에 가깝게 고치겠다는 욕심을 품은 세종이, 정비된 한자음을 적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합의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신화가 있다. 물론 한글의 제자 원리는 탁월하다. 특히 조음기관을 본떴다는 닿소리글자들은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추가되는 음운 자질을 드러냄으로써, 로마글자 같은 음소문자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음운자질문자'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소리들과 관련된 조음기관을 본뜬 기본 글자 다섯(ㄱ, ㄴ, ㅁ, ㅅ, ㅇ)에다 획을 더하거나 겹쳐씀으로써, 거셈(거센소리)이나 됨(된소리) 따위의 음운 자질이 추가된 새 글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실로, 훈민정음의 창제는 15세기 한국 음운학의 수준을 눈부시게 증명한다.

그러나 한글이 로마글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글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글이 로마글자보다 2천 년 쯤 뒤에 나타난 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그 2천 년 동안 인류가 쌓은 지식이 한글에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한글은 그 놀라운 제자원리에도 불구하고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쓰게 돼 있어서, 음소문자 본연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한글은 본질적으로 음소문자이고 그 제자원리만을 보면 음소문자보다도 한걸음 더 나아간 `음운자질 문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실제적 운용에서는 음소문자에 못 미치는 음절문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글에 대한 내 험담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어와 한글의 관련은 필연적이 아니고 그 둘 가운데 우리에게 훨씬 더 소중한 것은 한국어라는 것.
둘째, 한글은 숭고한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보기에 따라선 최고의 문자도 아니라는 것.


(♧ 주: 편집자는 위 글의 일부 의견(녹색 부분)에 대해 견해가 다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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