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불휘기픈나모

칼럼
2006.10.29 08:28

단일어 민족의 행복

(*.255.79.19) 댓글 0조회 수 17458추천 수 7
?

단축키

이전 문서

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필자 이익섭

단일어 민족의 행복

이익섭, 한국경제 [ 사설칼럼 ] 1998. 10. 9. 金

얼마전 일본 국어연구소 일행이 우리 연구원을 다녀갔다. 세계 각국에 일본어가 어느정도 보급돼 있는지를 조사하면서 일본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태도도 함께 조사하는 중이라고 했다.

국어도 이제 세계 여러 곳에 퍼져 있으므로 우리도 할 법한 연구를 이들이 먼저 시작했구나 싶으면서도 교포 후손이 아닌 순수 외국인을 놓고 보았을 때 일본어의 보급률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아 그런 사업을 개시한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그 부러움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동남아 중에서는 한국을 비중이 가장 큰 나라로 다루어 첫 조사지로 택했다 해서 퍼뜩 긴장됐다.
그리고 물었다.
과거에 뿌리박았던 일본어의 잔재가 어느정도인지도 조사하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감한 심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한참이나 혼란스러웠다.

꽤 애써 왔지만 일본어 잔재가 여기저기 깊게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수시로 목격한다.
어디 그뿐인가. 잔재가 아니라 온전한 모습으로 일본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 수치스러운 식민지 생활의 흔적이라 감추겠다는 생각을 그 누가 하는가. 어떻게 됐든 배우기 어려운 외국어 하나를 습득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번역된 것보다 원서가 읽기 쉽다고 일본어판을 사 읽는 분들조차 있지 않은가.
어느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했다는데 이 정도의 실태는 쉽게 캐냈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쾌재를 부를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천만다행인 것은 그 일본어 없이도 오늘날 우리는 조금도 불편없이 언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어느 식민지도 제 나라 말을 쓴다고 벌을 받거나, 제 나라 말로 된 이름을 못 쓰도록 강요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철저히 우리말을 잊도록 강요당했다.

얼마전 어느 좌담회의 사회를 본 일이 있는데 그 참석자들의 증언도 한결같았다. 집에서 조선말 한 사람 손들라는 조사를 쉬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집에 가서 가족끼리 얘기할 때에도 제 나라 말을 못쓰게 한 횡포가 어디 또 있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일본어 세상에서 살았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쯤 일본어 없이는 학교 교육도 시키기 어려워야 하고, 책도 내기 어려워야 하고, 관공서 일도 하기 어려워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흔히 가볍게 생각하지만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요, 또 깊이깊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인도가 독립 후 영어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았다가 영어 없이는 못 살도록 그 뿌리가 깊게 박힌 것을 알고는 그 후 결국 영어도 공용어의 하나로 승격시킨 일을 상기하면 정말 그렇다. 어디 인도뿐인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영어 아니면 불어 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고,동남아의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은가.

한 언어학사전을 보면 두개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해 쓰고 있는 나라 이름들이 총망라돼 있다. 대개 잘 안 알려진 나라들이요, 불행한 과거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런데 근자에 그 명단에 우리나라 이름도 끼였으면 하는 자들이 있어 세상을 어지럽힌 일이 있었다.

복에 겨우면 좀 불행해지고 싶은 심정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너무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불행했던 나라들은 이제 제 나라 말을 찾고, 제 나라 말로 된 교과서로 교육을 시키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나라에 따라서는 아직 중학교 정도만 돼도 여전히 영어로 된 교과서로 공부하는 형편이지만, 이제 노력이 쌓이면 중학교는 물론 대학교에서도 제 나라 말로 된 교과서로, 제 나라 말로 하는 설명을 들으며 공부하게 될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제 것을 찾아 이토록 고생을 하는데 우리는 제 것을 버리자고 야단들이란 말인가. 벌써 그토록 복에 겨웠단 말인가.

외국에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이리 보아도 같은 얼굴, 저리 보아도 같은 얼굴, 이쪽에서도 한국말,저쪽에서도 한국말, 그게 그리도 신통하고 그리도 감격스럽다고.

?Who's 강창석

profile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국어 관련 記事와 칼럼 일간지 등에 발표된 국어 관련 기사와 칼럼입니다.

번호 분류 제목 필자 날짜 조회 수
28 칼럼 [여적] 만두 [1]  image 윤흥인  2008.01.22 18778
27 칼럼 한글과 기계화   이기문  2006.10.29 18550
26 칼럼 '누리꾼'을 통해 본 우리말 다듬기  fileimage 이대성  2008.12.01 30637
25 칼럼 세련된 영어, 정중한 한자어, 초라한 국어  image 이대성  2008.12.28 31708
24 칼럼 한글 자모의 배열 순서   이승재  2006.10.12 24305
23 칼럼 한글의 자랑스러운 개성 [1]   이익섭  2006.10.29 19310
» 칼럼 단일어 민족의 행복   이익섭  2006.10.29 17458
21 칼럼 '철면피(鐵面皮)'와 '사이비(似而非)'   이준석  2007.12.16 22156
20 칼럼 '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   이준석  2007.12.16 27038
19 칼럼 일상 속의 바둑 용어  fileimage 이홍렬  2016.03.07 13556
18 칼럼 쉽게 한글 맞춤법과 사귀는 길   임동훈  2007.12.18 18601
17 칼럼 북한말_‘살밭다’, ‘어린 봄날’  image 전수태  2007.12.20 21930
16 칼럼 소위 북한의 나라꽃 ‘목란’   전수태  2007.12.20 23528
15 칼럼 영어 교육보다 급한 것(한국일보)  image 정유성  2008.02.09 18099
14 칼럼 부모에 대한 호칭어·지칭어   정호성  2006.10.23 19002
13 칼럼 ‘서울’의 중국어 표기   정희원  2008.01.16 23683
12 기타 나는 왜 한글專用(전용)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1]   조갑제  2009.06.30 30841
11 칼럼 한글날의 유래와 변천   조남호  2006.10.12 18680
10 칼럼 '얼짱'은 사전에 오를 수 없다   조남호  2008.10.20 31009
9 기사 中·日 자존심 건 ‘언어 전쟁’  image 조선일보  2007.01.10 19518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Next ›
/ 4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361-763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 1번지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姜昶錫 (☏ 043-261-2097)
전체 : 2413610   오늘 : 1363  어제 : 1685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hikaru100 / Edited by Kang Chang Seok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