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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칼럼
2006.10.29 08:23

漢字使用이 끼친 功績과 害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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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姜信沆
漢字使用이 끼친 功績과 害毒

姜信沆

  말은 원래 음성으로 하는 것이다. 文字는 이를 기록하는 하나의 手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원래 고유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漢子를 빌어 우리말을 기록해 왔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제시시켜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1) 하나의 假說과 現實

 일찍이 姜邯贊 장군이 極東에다가 세계 최대의 강대국을 건설하고 고유의 글자를 가진데다가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자랑하는 향기 높은 예술의 나라로 발전시켜 주었더라면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서로 앞을 다투어 가며 우리 글자를 배우고 즐겨 우리말을 익히느라고 야단일 것이다. 설혹 우리 글자가 훈민정음과 같이 배우기 쉬운 글자가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힘든 글자였었다고 하더라도 이 글자를 배우는 데 그런 것이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당대에서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의학계에서는 그 어려운 독일식 필기체를 사용했으며, 지금도 그 어려운 아라비아 글자가 아랍國 안에서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고래로 동양에서는 불경을 위하여 산스크리트라는 어려운 글자를 서슴지 않고들 배웠던 것이다. 이것은 글자가 배우기 쉽고, 어렵고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요는 그 글자가 표현하는 내용, 다시 말하면 그 글자로 나타내어지는 의미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쓰기 어렵고 배우기 어려운 글자라 하더라도, 그 글자가 표현하는 언어의 의미 내용이, 즉 개념이 가장 고도로 발달된 문화에 관한 것, 학술에 관한 것이라면 누가 그 글자를 꺼리겠는가?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갖은 고생을 해가며 여러 나라 글자를 배우고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 하나의 假說은 역시 슬프게도 하나의 假說로 그쳤지 우리의 현실은 이와 반대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서 로마자나 한자, 게다가 로서아 글자까지 여러 나라 글자와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 중에서도 로마 글자는 가장 배우기 쉽고 漢字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그동안 우리는 그 어려운 한자를 배우고 써왔기 때문에 요모양 요꼴로 뒤떨어졌다고까지 하는 이가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은 언필칭 漢字는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한글이나 로마 글자는 배우기 쉽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글자와 언어를 같은 것으로 착각한 사람 아니면 영어나 불어를 전연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일 것이다. 적어도 식자층에서는 로마 글자 26자만 알면 영어, 불어를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고 믿는 바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우리는 글자를 읽을 줄 몰라서 과학이 뒤떨어졌던가? 아무리 글자로는 읽을 줄 알아도 交流回路라는 物理學의 용어가 무슨 뜻인지 배우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중에 또 얘기는 하겠지만 문자란 인간의 음성을 기록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며, 특히 로마 글자와 같은 것은 인간의 발음을 그대로 가장 잘 옮겨 쓸 수 있게 마련된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영어에서 nestle이라고 써놓고 네슬(nestle〕, enough를 이나프 [envf]라고 하고, 불어에서 boyau라고 써놓고 브와요[bwajo], batailler를 바따이에[bataje]라고 발음하라니 세상에 이렇게 힘든 노릇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괴로움은 우리가 漢字의 획이나 음을 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애당초 사람이 말하는 대로 옮겨 적으려고 마련하였던 글자마저도(즉 表音字마저도) 사람의 발음과 멀어지게 된 데서 생겨난 결과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表記法 문제를 다루려면 딴 각도에서 논할 일이지 漢字가 어려우니 로마 글자가 쉬우니 하는 논술 태도는 고쳐져야 되리라고 믿는다. 즉,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문제는 글자가 쉽고 어려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글자가 배우기 쉽더라도 그 글자가 표현하는 언어의 의미 내용이 문명적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문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누가 글자를 즐겨 쓰려고 하겠는가.

  (2) 文字의 本質

 따라서 우리는 잠깐 글자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사람의 언어란 음성과 의미가 결합된 일종의 記號體系다. 이 음성과 의미(이것을 씨니피앙과 씨니피에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언어 기호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데 음성은 귀로만 들을 수 있는 것이요, 따라서 오래 보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그들의 언어를 오래 보존하고 귀로 듣지 않고서도 능히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곧 글자다. 즉, 글자란 사람의 언어 기호에 있어서 음성 대신에 의미와 결합되어서, 귀 대신 눈으로 언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다.

 이 글자는 그 성질로 보아 두 가지로 나누인다. 이른바 表音文字와 表意文字이다. 그러나 아무리 表音文字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음성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서 그 음성과 결합된 의미까지도 나타내게 마련이며, 또 한편으로는 表意文字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음성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떤 表音文字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의 음성 대신에 쓰여지게 된 것이므로, 表意的으로 쓰이지 않는 글자가 없는 것이다. 현행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 語源을 밝혀 적는다고 해서 발음대로가 아닌 곳(所), 꽃(花), 값(價), 옷안 (衣內)과 같은 表記法이 바로 이러한 예이거니와 영어, 불어의 예는 위에서 보인 바와 같다.

 오늘날 일부 언어학자들이 이런 모순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기도하고는 있지만 표음문자를 가지고 이런 표의적인 표기법이 행하여지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언어 사회의 보수적인 성격과 文法的인 고려 등에서 나온 것이며, 인간의 表音的인 表記法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漢字만이 표의적인 것이 아니고 또 漢字는 인간의 음성을 전혀 표시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대대로 이 글자를 가지고 音聲言語 대신에 언어생활을 해왔고 그들의 음성에 맞추어서 이 글자를 읽고 있다. 이것이 漢字의 음과 訓이거니와 이런 특질은 영어나 불어에서도 볼 수 있다. [d e:ni]라고 읽는 것은 음성에 따를 것이요, journey라고 쓰는 것은 漢字의 字形과 같고 눈을 통해서 뜻을 파악하게 해주는 것이다.

 (3) 우리가 漢字를 쓰게 된 형편

 위에서 글자에 관해서 얘기를 했거니와 一見 主題에서 벗어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말하려는 漢字의 성격을 옳게 파악해 보이기 위해서는 거쳐야 될 필요가 있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한자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중국이라고 하는 위대한 문화를 가진 민족과 이웃하여 수천 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웃치고는 너무도 거대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접촉이 잦아지게 되자 그들의 언어를 기록하기 위하여 마련하였던 漢字라는 글자를 빌어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당시의 우리 조상들도 우리말을 오래도록 보존시키고 싶었겠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고유의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한자를 빌어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며 어느 민족에게도 있는 일이다. 또한 세계에서 고유한 글자를 지닌 민족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글자란 언어와 달라서 그렇게 강렬하게 민족이나 국가를 배경으로 삼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글자를 가지지 못하였던 우리 조상이, 당시로서는 동양에 있어서 유일한 表記手段이었던 漢字나마 빌어서 우리말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현명한 조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우리 겨레는 남의 글자를 빌어 쓴 민족치고는 너무도 우수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 글자를 빌어 우리말을 그대로 기록하는 듯하더니 뒤에는 그 어렵다는 漢字 漢文을 마음대로 구사하여서 천 년 동안이나 書寫言語生活을 거침없이 해왔던 것이다. 이제 그 경위를 잠깐 살펴보자.

 (4) 漢字를 빌어 쓰게 된 以後

 우리 겨레는 漢字를 빌어 쓰기 시작한 이후로 비로소 우리 언어를 글자로 정착시킬 수 있게 되었다. 글자를 가진다는 것은 여간 대견스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우리 고대의 여러 모습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漢字를 빌어 쓴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겨레는 한자를 빌어서 쓰게 된 이후로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說話나 歌謠와 같은 口碑文學을 정착시키게 되었고, 역사를 기록하였으며, 地名, 人名, 官職名 등 고유 명사를 기록하는 동시에 편지와 같은 書寫言語를 통하여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 겨레도 문명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고, 자손에게 문화적인 유산을 남겨 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三國史記나 三國遺事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삼국시대의 고유명사에 관한 기록이나 鄕歌와 같은 詩歌의 기록은 이렇게 해서 남겨진 것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이런 기록들은 아직은 중국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글자만 한자를 빌었을 뿐 漢字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性格面, 즉 音과 訓을 잘 이용하여 우리말을 기록해 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吏讀니 鄕札이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표기 방법이 결코 오래 갈 수는 없었다. 鄭麟趾가 일찍이 訓民正音解例本 序文에서 "이런 방법은 참으로 구차스러운 수단이며, 이것을 일상 언어생활에서 쓸 때에는 그 뜻의 萬에 하나도 전할 수 없다.." 라고 지적하였고, 이것이 또한 訓民正音의 창제 동기가 되었었지만, 이러한 吏讀式表記란 참으로 제 문자를 가지지 못한 데서 나온 窮餘之策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리 조상들은 한자와 친숙해지고 백성 사이에 漢文에 대한 소양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자 어느듯 이런 이두식 표기 수단을 버리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우리 겨레는 한자를 통한 書寫言語生活에서 漢字를 訓으로 읽는 버릇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고, 소리만으로 읽게 되었으며, 中國 文章인 한문을 그대로 이용하여 우리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이두만은 19세기 말까지 쓰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겨레는 音聲言語와 書寫言語 사리에 완전한 乖離를 가져오게 되었으니, 비록 구차스런 방법일망정 남의 글자로나마 내 말 내 노래를 적던 우리의 고유 문학은 여기서 쇠퇴하게 되었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漢字의 사용이 우리말 자체의 음이나 문법체계를 크게 변경시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조상들은 漢文이라는 중국 古典言語와 우리말과의 二重 언어생활을 영유하여 오는 가운데 語彙面에서 가장 큰 영향을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세계 어떤 언어이건 간에, 언어와 언어의 접촉에 있어서는 단어의 借用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근세와 같이 국가의식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서로들 그렇게 국가나 민족의식이 강한 것이 아니었고 피정복 민족은 정복자의 언어와 모든 文物制度를 받아들이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찌 비단 지난날에만 있었다 하랴. 오늘날과 같이 민족의식이니 주체성이니를 부르짖는 마당에 있어서조차 우리말로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는 말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빌어다가, 바로 아는 체하고 우쭐대는 천민들은 가끔 우리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지 않는가. 그러기에 우리 조상들은 어떤 민족적인 굴욕감이나 정복자의 압박 없이도 당시로서는 최고의 문명이었던 중국어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즐겨 썼을 것임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런데, 다만 이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좀 지나쳐서 우리말 자체의 단어들이 너무나도 심하게 중국어 계통의 외래어나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에 억눌리는 신세가 되어서 심지어는 사람의 性格, 地名, 官職名, 制度名 등이 中國化하고 말았다. 이것은 중국만이 위대한 문명의 나라였고 한자로 표기된 언어의 내용만이 가장 과학적이며 학술적인 개념을 나타내었던 당시의 일이라 어쩌는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말은 좀 심하게 말한다면 十中 八九가 漢字語 없이는 우리말을 못 하게끔 되고 말았으며, 우리말 자체의 과학어나 추상적인 단어의 발달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말을 마음대로 기록하기 위한 訓民正音이 창제된 이후로도 사람들은 좀처럼 우리말을 도로 찾을 노력을 하지 않았다. 훈민정음 창제로 우리 국문학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되고 조선 말기에는 놀라울 만한 庶民文學의 발달을 가져오기는 하였지만 語彙面에서는 漢字가 쇠퇴할 줄을 몰랐다.

  "이 책은, 중일전쟁이 점점 격렬해 갈 무렵에 내가 폭탄이 서울에 떨어지기 전에, 이 몸이 전화로 죽기 전에 그날 그때까지의 우리 한글 동지들이 연구한 결과를 적어서 뒷세상에 전하여야 하겠다는 나의 문화 육성의 정성과 겨레 사랑의 의무심에서 삼년 동안 밤낮 전심 전력을 다하여 이뤄낸 것이었다."

 윗글은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열렬히 우리 글, 우리말만을 쓰자고 외치고 계신 어떤 어른이 쓰신 글의 한 구절이거니와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어 투성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이 실례가 곧 바로, 우리가 천 년간이나 漢字를 써 온 데서 나온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신세가 이렇게까지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말끝마다 漢字의 압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제대로 숨도 못 쉬었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우리 겨레가 얼마나 우수하였기에 또 그 옛날에는 얼마나 교육이 보급되었기에 그 어렵다는 漢字, 漢文을 가지고도 집집마다 넘쳐흐르는 文籍을 남기었으며, 그 당시에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철학이나 과학에 관한 것을 또 문학적 표현을 자유자재로 논술하였고, 당시로는 최고에 속하는 문명의 단어를 일상 회화에 거리낌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백성 전체의 지식 수준이 높았던 것인가 하는 것에 탄복하고 싶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한글조차 제대로 모르는 농민들이, 그들의 용어인 수수도열병(穗首稻熱病)이니 묘판관리(苗板管理)니 본답용비료(本畓用肥料)니 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姜着漢伊(강착한이)가 못되고 姜信沆이가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이 아니며,

  "우에서 나랏사람 가르치시는 바른 소리 지으사 아조 펴옵신 다삿 온 돌 되는 날 마마 거룩하오심 기리와 돌 삭여 이에 세우다,"

와 같은 우리말만으로 된 글을 마다하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 역사와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 나도 이 글의 서두에서 假說을 세우고 그렇게 되었었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假說이었고, 현실에 있어서는 우리 문화가 발달되지 못한 것처럼 우리말에는 과학어, 학술어, 추상어가 발달하지 못한 것을 어찌하랴. 그렇다고 이제사 "그림씨의 마침법의 베풂꼴의 도로 생각 때매김은 대개 그 바로 때매김에다가 도로 생각 때 도움줄기 「더」를 더하여 만드느니라" 라고 한다고 갑작스러이 과학이 발달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 그래서 漢字의 본 고장인 중국에서조차 근대 문명의 혜택을 먼저 받아 깨어난 일본으로부터 일본 사람이 만든 哲學이니 經濟니 하는 말을 그대로 쓰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중국사람 자신들도 生計(經濟)니, 玄學 또는 理學(哲學)과 같은 말을 만들어 썼었다고 한다.

  (5) 우리의 할 일

  漢字 공부는 확실히 우리에게 부담을 준다. 그러나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은 漢字보다 더 고통이다. 문제는 고통이고 아니고간에 마땅히 배워야 될 처지에 있으면 배워야 하는 것이다. 漢字는 우리말에 없는 추상성, 간결성, 含蓄性 있는 槪念을 몇 글자로 표현할 구 있는 능력으로 해서 학술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서양의 모든 학술 언어도 제나라에서 생긴 단어란 별로 없다. 대개 희랍어 계통 아니면 라틴어 계통의 단어에서 발달한 것이다. 또한 漢字에는 그 表音性으로 해서 造語法에 있어서 독특한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不」字 한 글자만 가지고 接頭辭식으로 쓴다면,

  「不法, 不可能, 不正, 不義, ……」

 라고 할 수 있고, 「家」字나 「化」字를 가지고 接尾辭식으로 쓴다면,

  「普遍化, 抽象化, 民主化, ……」
  「敎育家, 文學家, 思想家, ……」

 라고 몇 글자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 개념을 나타낼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漢字의 장점인데 書寫言語에서 同音異議語를 구별시켜 주는 것도 漢字의 좋은 점이다.

  의사 ― 醫師·意思·義士 / 구호―口號·救護 / 공석 ―公席·空席 /
  상품 ― 上品·賞品·商品

 그러므로 우리는 천 년이나 써 와서 이제는 완전히 우리말이 되어 버린 한자어를, 새삼 우리말로 바꿔치느라고 온갖 정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력을 배양하고 과학을 발달시키면 자연히 우리말도 世界化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르기는 모르되, 그 옛날에 우리가 漢字를 안 쓰고 한글만 썼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시대적인 조건이나 學文潮流로 보아, 동양에서 우리만이 과학이 발달하고, 부강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자를 써왔기 때문에 2차대 전에서 졌다는 일본은 아직도 그 한자를 그대로 쓰고 있는 처지이거늘, 어째서 그들은 이제 또다시 세계의 강대국에 끼어들려고 덤비는가?

  그렇다고 그 동안 한자·한문이 지식계급과 지배계급에 독점되어 온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육의 보편화를 부르짖는 오늘날 나도 이런 옛날식 한자·한문의 전용을 외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말 사용을 괴로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시대고 急進理想主義者와 保守傳統主義者가 있다. 그러나 나는 현실적인 妥協主義者다.

  혹독한 日帝의 우리말 抹殺政策 밑에서도 목숨을 걸고 지켜오신 어른 들의 위대한 공로로, 우리말이 이만큼 명맥을 부지하고 있는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지만, 너무나도 지나친 獨走와 억지에 가까운 이상주의에는 찬성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노력과 운동이 우리말의 단어를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나, 아런 단어의 발달은 겨우 일상 용어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學術用語나 함축성 있는 槪念語나 抽象語에서는 그 발달을 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아직 우리 문화가 그런 위치에 이를 만큼 발달을 못 보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지난 천년이나 되는 동안 한자·한문 공부에 급급한 나머지 자칫하면 자기를 잃을 뻔하기까지 한 우리의 조상들의 태도를 다시금 반성하면서,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가 섭취할 것은 받아들이되 어디까지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여며야 될 줄 안다. 나는 이 글을 끝맺음에 있어 八·一五 이후 우리 文人들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말이 상당히 다듬어졌고 일부 이상주의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말의 단어가 되살아난 것을 고맙게 여기는 동시에, 하루바삐 우리의 國力과 문화를 향상시켜 아름다운 우리말을 발달시키도록 우리 모두 힘쓰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바이다.

〈無形의 證人,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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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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