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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칼럼
2006.10.29 08:35

한글과 기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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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기문
한글과 기계화

이기문(새국어소식 제3호, 1998)

한글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자랑이다. 한글날과 같은 기념일을 가진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런데 자랑은 곧 짐이기도 하다. 큰 자랑일수록 짐이 그만큼 무거워진다.

최근에 나는 한글에 관한 짤막한 글(「한국사 시민강좌」 23호, 1998)의 끝을 “높은 창의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갈고 닦고 고쳐 나가지 않는다면 곰피고 녹슬고 말 것이다”라고 마무르면서 마음 한 구석에 불안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한글을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핀다면서 그것을 아주 망가뜨릴 뻔한 지난날의 일들이 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가로풀어쓰기’의 주장을 들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을 알파벳과 비슷하게 고치자는 주장이었다. 20세기 초엽에 처음 제창된 뒤로, 우리나라의 이름 높은 한글학자들이 강하게 이 주장을 폈는데, 기계화(機械化)를 위해서 이렇게 고쳐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고 크게 외치면서 그것을 알파벳의 아류(亞流)로 만들기에 힘썼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또 있을까.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기계화 때문에 한글을 고친다는 것은 본말(本末)이 뒤바뀐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기계는 한글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 그 때문에 한글을 망가뜨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기계에 맞추기 위해서 한글에 손을 대는 일은 마치 구두에 맞추기 위해서 발을 수술하는 것과 같다고 나는 말한 일이 있다(「새교육」 170호, 1968). 한글 본연의 모습과 특징을 잘 살리는 기계화야말로 진정한 기계화라는 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글은 종서와 횡서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글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다. 음소문자이면서 이런 특징을 가진 체계는 한글밖에 없다.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이다. 횡서밖에 못하는 알파벳은 땅띔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알파벳 위주로 고안된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형편은 어떤가. 짧은 글이나 긴 글이나 하나같이 횡서다. 키다리가 작다리 나라에서 작다리 흉내를 내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꼴이다.

한글을 잘 가꾸는 일은 정성만 지극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성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탁 트인 생각, 확고한 주견(主見)을 가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정으로 한글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종서와 횡서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종횡무진의 기계부터 만들어야 한다. 한글과 같은 위대한 문자 체계를 창조한 우리 민족의 천재가, 하려고만 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아주 새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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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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