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철면피(鐵面皮)'와 '사이비(似而非)'

by 강창석 on Dec 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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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www.korean.go.kr/nkview/nknews/200204/45_5.html
필자 이준석
고사 성어를 찾아서

'철면피(鐵面皮)'와 '사이비(似而非)'

이준석(李浚碩) / 국립국어연구원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가리켜 '후안무치(厚顔無恥)'나 '철면피(鐵面皮)'라 한다. '후안무치'가 '-하다'라는 접사와 어울려 형용사로 쓰이는 말이라면 '철면피'는 명사적인 용례를 보이는 말이다. '철면피'는 송(宋)나라 때 손광헌(孫光憲)이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북몽쇄언(北夢蔘言)"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북몽쇄언"의 기록에 따르면, 왕광원(王光遠)이라는 사람은 출세욕이 지나쳐, 윗사람에게 아첨하기를 즐겨 하였다. 그는 당시의 권력자가 습작한 시에 대하여 이태백(李太白)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신운(神韻)이 돈다고 하였고, 심지어는 채찍에 맞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권력자에게 잘 보일 수만 있다면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그를 두고 당시 사람들은 "광원의 낯가죽은 철갑 열 겹을 두른 것처럼 두껍다.(光遠顔厚如十重鐵甲)"라고 하였다.
    그런데 송(宋)나라의 역사서인 "송사(宋史)"에는 관리의 부정을 감찰하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의 직책을 맡은 조변(趙抃)이라는 사람이 권력자이건 천자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건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그 부정을 적발하므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철면어사(鐵面御史)'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철면'이라는 말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뻔뻔스런 사람' 외에도 '강직하거나 준엄한 대상'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 적이 있다. 그런데 고사 성어 '철면피'가 우리말에서는 '염치를 모르는 뻔뻔스러운 사람'이라는 한 가지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이 있다. 겉은 비슷하지만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이 말은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온다.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제자인 만장(萬章)이 맹자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愿)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할 텐데 왜 유독 공자께서만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지요?"
    맹자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비난하려고 하여도 비난할 것이 없고, 일반 풍속에도 어긋남이 없다. 집에 있으면 충심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세상에 나아가 행할 때는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그의 겉모습만 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하며,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와는 함께 요(堯)와 순(舜)과 같은 도(道)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도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 한 것이다."

사이비는 원문에는 '사이비자(似而非者)' 또는 '사시이비(似是而非)'로 되어 있다. 사이비는 비슷하지만 실제는 아니기 때문에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사이비는 명사 단독으로 문장 안에서 주요 문장 성분으로 분포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다른 명사를 꾸며 주는 관형어로 더 많이 쓰인다. '사이비 의사', '사이비 종교', '사이비 신도' 등과 같이 수식받는 명사가 내용이나 실제가 특히 중요하지만 그 내용이나 실제를 갖추지 못한 채 외양이나 형식만 그럴듯할 때 그 대상을 수식하는 관형어로 분포한다.
    '사이비'라는 말과 비슷한 뜻을 지닌 고유어로 '돌팔이'가 있다. 이 말은 엉터리 실력을 가지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을 속되게 가리키는 것으로 주로 쓰인다. '의사'와 결합할 경우 '사이비 의사', '돌팔이 의사'는 둘 다 쓸 수 있다. 그러나 '종교'라는 단어와 결합할 경우 '사이비 종교'는 자연스러우나 '돌팔이 종교'는 매우 어색하다. 따라서 '사이비'보다 '돌팔이'가 전문직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래어로서 '사이비'와 비슷한 뜻으로 한때 많이 쓰였던 것으로는 '나이롱 신도', '나이롱 면허', '나이롱 학생' 등에서 볼 수 있는 '나이롱'이라는 말을 들 수 있다. '나이롱'도 겉만 비슷하고 실제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사이비'와는 달리 명사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다른 명사를 꾸며 주는 관형어로 많이 쓰인다. 요즘에는 '무늬만 학자', '무늬만 의사', '무늬만 학생' 등에서처럼 명사 '무늬'에 보조사 '만'이 결합한 '무늬만'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데 이때의 '무늬만'도 '사이비'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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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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