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적] 만두

by 강창석 on Jan 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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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윤흥인

[여적] 만두

                                                                                                                                 경향신문|기사입력 2004-06-14 19:21 |최종수정2004-06-14 19:21

충렬왕 때의 고려가요 ‘쌍화점’의 첫 장을 풀이하면 “쌍화점(만두가게)에 쌍화(만두)를 사러 갔는데, 만두가게 주인인 회회아비(몽골인)가 손목을 잡더라. 이 소문이 밖에 나돌면 가게의 꼬마 심부름꾼 네가 퍼뜨린 것으로 알겠다. 소문이 나면 다른 여인들도 올 게 아니냐”는 뜻이다. ‘남녀상열지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완성된 만두 모양이 한송이 꽃과 비슷하다 하여 조선시대까지도 만두를 쌍화(雙花)라 불렀다 한다. 이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이미 중국이나 몽골로부터 만두가 들어와 왕이나 서민 모두 즐겨먹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만두는 밀가루를 발효시켜 부풀린 마치 호빵 같은 것을 말하고, 밀가루로 만든 얇은 껍질에 소를 싸서 끓이거나 기름에 지지거나 찌는 것은 ‘자오즈(餃子:교자)’라 하며, 물만두는 그래서 ‘수이자오(水餃:수교)’이다. 우리가 만두라고 하는 것은 ‘자오즈’에 가깝다.

이는 만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더욱 다양화하면서 전통음식이 됐기 때문이다. 껍질의 재료에 따라 밀만두·어만두·메밀만두가 있고, 소의 재료에 따라 호박만두·고기만두·버섯만두·김치만두 등이 있다. 만두를 빚어서 국에 넣고 끓인 것은 만두국, 쪄서 국물이 없이 먹는 것은 찐만두, 차게 식힌 국에 넣은 것은 편수라 한다. 빚는 모양도 세모 모양으로 빚은 변씨만두, 해삼 모양으로 빚은 규아상 등 실로 다양하다. 만두를 좋아한 이유도 밥이나 불고기, 생선회 같은 것을 상추 같은 데 싸먹으면서 복(福)을 같이 먹는다고 여겼던 것처럼 만두가 딱 어울리는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 애호식품에 쓰레기 만두소를 썼다 해서 난리다. 결국에는 한 업자가 자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이 지경에 이르도록 아무런 사전조치가 없었다는 데 있다. 사회적 합의사항인 식품안전에 대한 규제까지 마구 풀어버린 ‘강심장’에는 어이가 없다. 정부가 책임을 다했다면 소비자들이 쓰레기 만두를 먹을 리는 물론, 공급자가 자살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윤흥인 논설위원/in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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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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