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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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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연합뉴스
"국어(國語)는 만들어졌다. 그 만들어진 역사는 1세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 나간 소리라 할 것이다. 개중 어떤 점잖은 사람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거론하면서 상대방을 타이르기도 할 것이다. 세종보다 수백년, 아니 천년 이전에 이미 '국어로서의 한국어'는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어는 만들어졌다. 기껏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는 1세기 남짓하다.

1997년 일본 학계의 권위 있는 '산토리상' 수상작인 '국어라는 사상'은 그 대상을 일본어로 삼아, 일본인들에게 지금은 의심의 여지 없이 통용되는 '국어'로서의 일본어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발명되었으며, 그렇게 발명된 국어가 어떤 '무시무시한' 역할들을 수행했는지를 탐구한다.

그 언어가 무엇이건 근대 이후에 그것이 국어(national language)로 발명되는 과정을 '국어라는 사상'에서 그 저자 이연숙은 이렇게 요약한다.

"'네이션'(nation)이라는 정치공동체와 '하나의 언어'를 말하는 언어공동체라는 두 가지의 상상이 중첩되고 맺어졌을 때, 거기에는 상상임신에 의하여 태어난 '국어'라는 자식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문화사상가 베네딕트 앤더슨의 유명한 명제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를 언어에 적용한 연구사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선언이다.

물론 앤더슨의 짙은 영향이 묻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연숙은 국민 혹은 국가 정도로 흔히 옮겨지는 '네이션'이 '이미지로서 마음에 새겨진 상상의 공동체'이듯이, 언어 그 자체의 동일성 또한 네이션의 동일성 못지 않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앤더슨과 다른 길을 걷는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네이션이란 상상의 공동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인식' 자체가 아예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연숙에 의하면 일본어가 일본의 '국어'로 인식된 것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다고 주장한다. 메이지시대 이전, 나아가 그 직후만 해도 일본어가 일본의 '국어'라는 의식은 없었다.

쉽게 예를 든다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 "어? 당신도 나와 같은 국어를 사용하네? 그러니 나와 당신은 같은 '동포'군"과 같은 인식이 생겨난 것은 일본의 경우 그 역사가 기껏 1세기 남짓할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일본'국민'이 사용하는 언어, 즉, 일본어를 '국어'로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연숙은 1894년 청일전쟁 개전 직후 '국어와 국가'라는 강연을 행한 국어학자 우에다 카즈토시를 그 원류로 지목한다. 우에다는 "일본어는 일본의 정신적 혈액"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여기에서 '국어'와 '국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호소는 그의 제자 호시나 코이치에게 전수된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호시나라는 국어학자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이연숙은 특히 그가 주창한 식민지에 대한 언어정책을 주목한다.

호시나는 국어정책에 의한 이민족의 동화야말로 식민지 지배를 안정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에서 국어정책의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 시대에 호시나의 호소는 이렇다 할 만한 효력을 내지는 못했다.

아무튼 '국어'는 발명되고 나서 그것이 사용된다고 상상된 영토 내에서는 전지전능한 언어의 제국을 형성한다. 이 힘을 바탕으로 국어는 '방언'을 끊임없이 추방하고, 다른 '국어'가 사용되는 식민지에 대해서도 지배력을 행사하려 한다.

한데 이연숙에 의하면 국어가 식민지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식민지에서 국어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우리가 가르쳐야 할 국어는 표준형이 무엇인가"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분석 등을 근거로 이연숙은 근대 일본의 국어정책이 폭력적이었던 것은 그 '국어'가 강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반이 취약한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전후의 일본 '국어'는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이연숙은 여러 얘기를 하지만, 가장 주시할 만한 곳은 80-90년대 일본사회를 풍미한 '일본어의 국제화' 논의에서 호시노의 그림자를 지적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가 '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해서도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이연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진작 번역되었어야 할 이연숙의 '국어라는 사상'이 고영진ㆍ임경화 두 사람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완역돼 나왔다.

저자 이연숙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같은 대학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명출판. 387쪽. 2만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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