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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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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www.woorigle.com/W_font/list_03.php
필자 홍동원
홍동원 교수 기고문 - designdb/ 2003년 v186호 발췌

1999년 3월 2일, 조선일보 1면이 가로짜기 조판으로 바뀌면서 한글의 세로짜기 출판문화는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과연 이러한 변화는 진화인가 혁명인가. 그간 하루가 다르게 변해온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시간적인 추세로 본다면 분명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반세기 이상의 변화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문자의 배열방법이 바뀌는 시간이 반세기라 함은 당연히 '혁명'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가로짜기 출판문화는 한국동란 이후 미군정 시기에 교과서를 무상으로 지원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반세기 동안 우리는 가로짜기와 세로짜기 한글 형태를 혼용하는 시기를 겪었다. 세로짜기는 우측 상단에서부터 하단으로 글자를 배열하며 좌측으로 행을 이동하는 운행법이고, 세로짜기는 좌측상단에서 가로로 글자를 배열하고 세로로 행을 이동한다. 페이지를 넘기는 방법 역시 이러한 문자배열 방법에 따라 정해진다. 전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후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책을 묶는 방법도 이에 따라서 우철과 좌철로 나뉜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가로쓰기 혁명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동양식 제책 방법인 우철(책의 오른편을 묵는 제본)을 인사동 골동품들과 함께 진열되는 물건으로 만듦과 동시에 한글의 인식 형태로 구세대와 신세대를 확연히 구분하였다.

출판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문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 말은 출판의 변화 기준은 문화적인 바탕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글자의 구조, 형태, 그리고 배열방법 등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과 함께 연구되어야 하며 이런 활동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글자의 배열방법 혹은 타이포그래피라는 말 뒤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바보같은 글자운영 정책이 있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한글의 타이포그래피는 문화적 배경에서 가로쓰기를 시작했다기보다 기술적 열세로 서구의 문자배열 방법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중국의 진시황제가 한자의 표기를 통일한 일이나, 아니면 어려운 한자를 좀더 대중적인 형태로 만들고자 간자체를 만들어 낼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인 혁명은 체계적이며 자체적인 분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느 누구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지거나, 외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문자의 사용은 하나의 고유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자배열 방법이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혁명'이라는 단어보다는 '수난'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그것은 개화의 시기를 놓쳐버린 나라가 서구의 문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기술적으로 열등한 시기로 들어서게 되고, 출판의 행태도 예외 없이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적인 출판문화를 미련 없이 하나 둘씩 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순전히 문화적 통찰 없이 이루어진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는 다른 문화권의 자본과 기술력이 있다.

일본의 모리자와의 수동사식기에 팔아 넘긴 한글

우리가 본문에 널리 사용하는 명조는 일본의 전통적인 본문 글꼴인 명조와 청조 두 가지 글꼴 중 명조와 무관하지 않다. 모리자와는 이 명조체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을 개발해줄 것을 최정호에게 부탁하고, 글자를 써준 비용과는 비교도 안될 비싼 수동사식기를 수입하게 되었다. 한글은 있으나, 사용하기 힘든 이유의 첫 번째가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하게 되고,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글자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기에 일본활자를 운영하는 기술력 위에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니, 글자의 폭을 좁히고, 벌리고, 우측으로 기울게 하고, 혹은 좌측으로 기울게 하는 기형적인 글자 운영법이 나오게 되고 글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 못해 정확한 자폭과 그 폭에 맞는 자간을 갖지 못하는, 그래서 마이너스 자간이라는 독특한 글자 운영법이 한글에 나타난다.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글자 운영법이 바로 가로쓰기이다. 분명 글자는 세로쓰기를 전재로 만들어졌건만 미국이 무상으로 나누어준 가로쓰기로 교과서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가로쓰기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세로짜기는 전통 혹은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형태로, 가로짜기는 개혁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인식되었고, 이는 대학신문들이 진보을 내세우며 가로쓰기를 사용한 것이나, 1987년 한겨레신문이 개혁적인 성향의 이데올로기를 나타내기 위하여 언론의 보수성에 도전장을 내면서 우리나라 중앙 언론지로서는 처음으로 가로짜기 편집을 내세운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시기에 발행된 출판물들을 보면 초기에는 세로짜기와 가로짜기 타이포그래피를 혼용하는 시기가 있고, 이때 세로짜기는 구두점 외에 별다른 문장부호도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고, 가로짜기는 문장부호와 띄어쓰기를 하는 혼용 형태가 보여진다.

이후 가로짜기는 젊은 층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세로짜기는 장년층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차라리 이 시기가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다양하다고 할 수 있으며 문장부호나 띄어쓰기가 공히 적용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아무런 기초연구 없이 가로짜기를 하다 보니 세로짜기용으로 개발한 한글은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세로짜기용으로 개발할 때 가독성의 기준선이 되었던 중성의 기둥 형태는 가로짜기에서 글을 읽을 때 치명적인 방해가 되었고, 초성과 종성의 위치들이 아무런 정의 없이 오르내리게 되고, 그 크기도 각색이었다. 다시 말해 서양식 글자 배열 기준선에 한글을 맞추다 보니 아주 읽기 어려운, 글을 읽으면서 눈을 쉬 피로하게 만드는 글꼴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우리는 한글보다 구미문자가 더 아름다워 보였나 보다. 그리고 그 많은 한글 전문가들은 가로쓰기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조건 한글이 과학적이며, 아름답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대었다. 아직도 우리는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는 원칙을 정하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에 사글세로 사는 한글

전산사식이라는 시기도 잠깐 기술의 발전, 특히 컴퓨터의 발전은 출판계에 대단한 변화를 가져왔다. 소위 데스크톱 출판이 그것이다. 한글이 가졌던 민족적 정기도 잠깐, 한글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 운영체계로 들어가며 자기 기술이 없는 민족의 글자가 갖는 서러움을 처절하게 느끼게 된다. 그나마 윈도우는 양반이다. 맥켄토시는 한술 더 떠서 글자를 마음대로 왜곡한다. 그러면서 문장의 배열 역시 세로쓰기를 박물관 속으로 넣어버렸다. 우리나라의 모든 출판물이 가로쓰기로 획일화 된 이유 중 그 이름도 삼삼한 Y2K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문제 앞에 세로쓰기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Y2K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컴퓨터 종주국의 얼굴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출판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 일간지들도 줄줄이 가로짜기 조판으로 바뀌면서 한글의 세로짜기는 우리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가로쓰기에 대한 연구가 없었기에 정책도 없고 지론도 없는 상태로 한글은 컴퓨터로 들어가 완전히 대중화 되었다. 그리고 컴퓨터에서 제공하는 구미문자용 디폴트에 한글이 끼어 표현되며, 아주 당연히 대우 받지 못한 우리의 아름답고 과학적인 한글은 바보 같은 우리들로부터 천대 받으며 구미문자에 비하여 완벽한 열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벌을 받는다. 구미문자보다 어른거리는 한글 꼴을 컴퓨터에서 봐야 하고, 눈을 버려 안경을 써야 한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황이다. 일천했던 글꼴이 그나마 컴퓨터의 도움으로 다양한 글꼴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꼴에도 차마 언급하지 못할 치부는 있다. 그것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업체의 영세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작권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한글을 폰트로 만드는 전용 툴의 부재 탓으로 돌려야 할까, 일반인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문가로 인정 받는 본인조차 그 많은 글꼴들의 구조적 특징을 변별할 수 있는 폰트가 얼마 없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가로쓰기 전용의 글꼴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아직도 없다. 나라에서 만든 바탕체도 그 기준을 밝힌 바 없다. 그저 과학적이고 아름답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바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글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컴퓨터에서 구미문자는 한글보다 사용하기 훨씬 편하다. 그래서 한글도 과학적이라면 그만큼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어 달라고 말한다. 지금 구미문자를 보면 한글보다 훨씬 과학적이다. 적어도 타이포그래피면에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우수하다. 그 대표적인 이유를 세 가지만 들어본다.

첫째, 구미문자는 문자마다의 고유의 넓이인 위스(width) 값을 갖고 있다. 위스 값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또 폰트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값은 개인이 혹은 한 폰트회사가 정하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2,350자이건 11,172자에 해당하는, 혹은 그 글자들의 조합모듈을 정하는 작업은 글자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모여 정해야 하면 이것이 산업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문화조차 없고, 정부도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이런 것이 해결되지 않아 나타나는 아주 기가 막힌 현상들 중 대표적인 것이 글자마다 마이너스 자간을 넣는 행위이다. 그렇게 일정하게 넣으려면 아예 그 만큼 좁혀 만들면 될 것인데 좁히는 것도 쉽지 않은지 글자마다 간격은 제각각이다. 이런 글자의 자간을 대책 없이 줄여 본 경험은 디자이너라면 비일비재 할 것이다.

둘째, 기준선 문제이다. 우리나라 문자는 전통적으로 혼용문자이다. 기본적으로 한자와 병기를 하며 아라비아 숫자를 혼용한다. 구미문자도 다반사로 섞어 쓰고 있다. 구미문자를 사용하면 서체를 아무리 많이 다양하게 사용하더라도 기준선이 일정하여 행이 가지런하게 보인다. 그러나 한글은 가로쓰기를 하면 그 기준선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서체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없다. 심지어 한가지 서체 안에서도 아라비아 숫자와 한글의 기준선과 크기가 달라 행을 어그러트린다.

셋째, 글꼴의 기준이다. 시대에 맞는 그리고 기술을 적용한 글꼴이 있다. 핸드폰에 사용되는, 혹은 컴퓨터의 13픽셀 이하에서 표현되는 글자꼴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특히 획이 복잡한 글자들은 서로 붙고 획을 공유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기준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직 속도 모르는 기관의 어른들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문자를 함부로 바꿔 사용한다고 말한다. 한번이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의 글자가 정말 세종대왕이 만든 문자인지 확인한다면 그 동안 안일하게 대처해 망가진 한글 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은 지금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해줄 기술이 필요하다. 모니터 환경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힌팅(hinting)과 커닝(kerning) 기술에 한글은 그 수혜대상이 아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구미문자는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건만 한글이 깨지고 혹은 뿌옇게 번져서 보이는 현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그 동안 외형적인 발전에 너무 치우쳐 정말 한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다. 글꼴의 양적 팽창에 우리는 한글이 발전했다고 믿었고,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만든 조상의 빛난 얼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이상 현실에 '눈가리고 아웅'은 안 했으면 한다.

우리와 같은 타이포그래피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과 일본은 아직 세로쓰기를 기본으로 한다. 그 이유는 아직 가로쓰기에 대한 문화적인 변화에 대하여 연구가 덜 되어서라고 말한다. 두 나라 모두 글자는 국책사업이다. 우리보다 전통이나 기술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이 분명 아니다. 아직 가로쓰기로 바꾸지 못하는 그들보다도 분명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 이는 한글날이라고 해서 연말에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얼굴 들이밀고 출석부 확인하듯이 특집 한판 하고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반포하면서 한글사용의 매뉴얼인 해례본을 만들어 어린 백성이 편히 한글을 사용하게 그 기준과 원칙을 설명하였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있다면 당연히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문화가 바뀔 때 그 운용 방법과 원칙에 맞는 기준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그 매뉴얼을 누가 만들어야 하는지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래야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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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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