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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칼럼
2008.11.04 05:48

조달청, 기모노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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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www.journalog.net/3springs/5477

이 나라에선 정권뿐만 아니라 대통령만 바뀌어도 정부 조직이 바뀌는 게 관례처럼 됐다. 올해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어김없이 부처 통폐합을 단행했다. 자주 바뀌다 보니 가끔 이름이 헷갈리곤 한다. 

청와대 누리집에서 정부 조직도를 찾아봤다. 정부 조직도가 물구나무를 선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예전엔 맨 위에 대통령이 나오고 국무총리와 각 부 순서로 나왔는데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13부와 외청, 국무총리, 대통령 순으로 돼 있다. 권위주의 색깔을 지우려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일단 맘에 들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외교통상부 등 7곳만 옛 이름을 유지하고 6곳은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만 보아도 그곳이 어떤 일을 할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다 이름에 걸맞은 구실을 다하길 간절히 바란다. 

각 부의 이름 아래에는 소속 외청의 이름이 적혀 있다. 18곳이다. 이건 바뀐 게 없는 듯하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에는 외청이 네 곳이나 되는 것이 눈에 띈다.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다른 부보다 유독 많다. 그 이름을 보니 무엇을 하는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조달청만 빼고. 

조달청이란 이름을 한두 번 봐 온 것도 아닌데 왠지 낯설다. ‘조달’이란 말 때문이다. ‘조달’은 한자로 ‘調達’이라고 쓴다. 한자를 봐도 얼른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했다. [자금이나 물자 따위를 대어 줌. ‘대어 줌’, ‘마련함’으로 순화]라고 풀이돼 있다. 정부 기구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쓰이는 낱말을 순화하라고 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사전에서 ‘순화’라고 한 한자어는 대부분 일본어투이다. 역시 국어원에서 펴낸 ‘일본어투 용어 순화 자료집’을 확인해 보았다. ‘조달[調達, ちょうたつ]=> 대어 줌, 마련함’이라고 올라 있다. 정부에서 발간한 ‘행정용어순화편람’에서도 순화해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기모순이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순화 대상으로 분류한 일본어투의 낱말로 중앙정부 기구의 이름을 삼고 있다니 말이다. 조달청 누리집을 확인해 보니 1961년부터 이 이름을 써 왔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고객 감동을 전달하는’이라는 이 기관의 구호가 공허하게 들린다. 그 고객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가? 

‘조달’이란 낱말, ‘자금 조달, 물자 조달’처럼 언중이 많이 쓰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건 ‘조달’이 일본어투 낱말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 기관의 이름에 버젓이 쓰이는 낱말을 일본어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그랬다. 그걸 이제야 인식하게 되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조달청 사람들도 몰랐던 것일까? 알고도 그러려니 하고 넘겨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달청은 정부 각 기관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매하여 공급하는 곳이다. 각종 정부 공사를 발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리집에서 보니 이 기관의 기능에 ‘재정집행관리, 국유재산관리’가 추가된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조달’과는 성격이 다른 일도 많이 하는 듯하다. ‘조달’이란 말이 이 기관에서 하는 일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어디에다 ‘조달’한다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이름만으로는 국민에게 조달한다는 것인지, 정부에 조달한다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국가 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니까 뭔가를 국민에게 ‘조달’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정부 기관을 위해 ‘조달’하는 기관이라면 ‘정부’라는 말을 넣어 주는 것이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일일 터이다. 

어쨌든 하루빨리 이름을 바꿔야 한다. ‘조달청’의 기능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으면서 왜색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이름을 찾기 바란다. 이름 바꾸는 데 어떤 절차를 얼마나 복잡하게 거쳐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정부 기구 통폐합도 어렵지 않게 하는 판에 외청 이름 하나 바꾸는 게 무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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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석(姜昶錫, Kang Chang Seok)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연구실: 58동 103호, 043-261-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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