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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기픈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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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문길

일본 神代文字 논란

 (부산 외국어 대학 김문길 교수의 글을 어느 분이 발췌, 정리하여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한글창제나 신대문자 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믿고 퍼뜨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옮긴이 씀 )


1. 《신대문자》란 무엇인가?

日本 神社에는 신대문자라는 것을 위패로 모시고 있는 곳이 있다. 니혼의 국어학자들 가운데 신사의 '신'들이나, 토템,애니미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신대문자가 니혼의 신대 때에 창제되어 세계로 보급되어서, 버마어가 되었고, 조선에도 들어가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이 되었다고 주장 한다. 그러나 신대문자라는 것은 반대로 우리의 한글을 베낀 것이다. 한글을 베껴서 신대문자를 짜집기한 사람은 니혼문학의 큰별인 '히라다 아쯔다네' 이다.

니혼국학은 에도시대가 끝날 무렵 서구문화가 물밀듯이 들이 닥칠 때, 서구문화를 배격하고 순수한 니혼 고유문화를 숭상하자는 뜻에서 일어난 학문이다. 즉 니혼국학은 서구문화 특히, 네델란드 문화인 서양학문을 배격하자는 뜻에서 형성되어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히 정치적으로는 왕조국가를 부르짖고, 문학적으로는 고전문학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에 한걸음 나아가 무인정치가 떠오르게됨으로서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신도교를 다시 정비하는데 큰 뜻을 두게 되었다.

니혼인들의 정신바탕을 이룬 신도교, 신도사상이 이때 국학자들에 의해서 교리가 짜여졌고, 많은 신사가 재건되고, 교파가 생겨 신도교가 갑작스럽게 팽창하였다. 이러한 국학사상이 거세게 일어날 때 '히라타 아쓰타네'의 국학사상에서 나쁜 사상으로 여겼던 것이 불교와 유교였고 불교와 유교를 박해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일으키면서 유교에서 나온 한자를 쓰자니 마땅치 않았고, 또한 불교경전에서 나온 가타가나, 히라가나도 못마땅히 여겨 글을 쓰지않았다. 때문에 '히라타 아쓰타네'는 새로운 글을 만들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니혼국민들에게 고전의 신비를 불어 넣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고심 끝에 소릿값과 모양을 한글에서 베낀 신대문자 47자를 만들어냈다.

이 신대문자를 짜집기한 시기와 서적은 1811년부터 1819년 사이, 「고사치개제기(내려오는 옛글자 소개)」 네 권을 엮을 때부터이다. 「고사치개제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묶음으로 나누는데 이 신대문자는 봄에 해당하는 춘권에「신대문자 해설」이라 하면서 글을 지었다 짜집기된「신대문자」의 「고사치개제기」를 그 8년후인 1819년 그의 글쟁이들이 다시 「니혼문학 책」이란 이름으로 재판하여 국민들에게 보급시켰다. '히라타 아쓰타네'은 신대문자가 신대 때부터 창제되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즉, 아마테라스가「하늘의 바윗구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 여러 신들이 자기가 만든 예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릴 때, '아메노코 야네미코'가 신대문자를 만들어 축하말을 해서, 천명대신을 동굴에서 나오게 했다고 하였다. 그 후 신대문자는 '아메노코 야네미코'의 후손의 가문에 전해져서 아히루(阿比留)문자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신대의 글자는 백제의 '왕인'박사가 천자문/ 논어등 한자를 갖고 들어와 불교문화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어 절과 신사에 방치됐었는데, 막부의 공신 '사토후 노부히로'와 '아라이 하쿠세키'가 이 글을 모으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겨우 빛을 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히라타 아쓰타네' 자신이 만든것이다.

그는 신대문자를 두 종류로 짜집기하였는데 하나는 신대문자 진서체인 「비인서」이고, 다른 하나는 신대문자 초서체인 「보인서」이다. 진서체는 한글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읽기 쉬운 글이다. 반대로, 초서체는 진서체로 토를 달지 않으면 매우 읽기 힘든 것이다. '히라타 아쓰타네'은 읽기 어려운 초서체를 남잣글이라 했고, 읽기쉬운 진서체는 여잣글이라고 했다.

그러면 '히라타 아쓰타네'는 언제 우리 한글을 짜집기하였는가?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니혼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의 문화인들을 초대하여 조선문화를 수용하게 된다. 이것이 조선통신사이다. 이때 우리 한글도 많이 배웠는데, 그 무렵의 선비로서 국학학자인 '아오키 아츠노리'같은 이는 한글을 배우도록 우리글 교본인「곤양만록」이라는 책까지 펴내게 되었다.

'히라타 아쓰타네'은 이「곤양만록」을 입수하여 신대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히라타 아쓰타네'이 한글을 토대로 하여 신대문자를 만든 까닭은, 그 무렵 니혼의 신도교가 다시 정비되면서 국학자들은 이 신대문자를 가지고 신도의 찬가인 축하글로 이용했고 그 후 신대문자가 신사나 유적지에 부착되어, 이 글을 섬기면 가정이 평안하고 모든 시험에 합격한다는 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2. 신대문자에 대한 논쟁

'히라타 아쓰타네'이 신대에 문자가 있었다 하고 일문전(日文傳)이란 책을 펴낼 때, 국학의 동료였던 '반 노부토모'는「격자본말」이란 저술에 「신대자편」이라는 제목을 붙여「조선의 언문이 니혼에 들어와서 변형된 것이 일문전(日文傳)이 되었고, 따라서 조선의 언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지금 니혼에 신대문자 운운하고 있는데, 에도시대 이전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고, 또는 어떠한 기록의 흔적도 있지 않다」고 철저하게 부정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학의 동료들과 스승들도 니혼의 고대인 신대기에는 고유글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히라타 아쓰타네'의 스승인 '모토오리 노리나가'도「고사기전(古事記傳)」에서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니혼 고유의 글이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명치유신이 단행되어 '히라타 아쓰타네'의 문하생들이 많이 등용되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게 되면서 신대문자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물이 신대문자 보급의 계승자로 지목되는 '오키아이 나오즈미' 이다. 그는 명치 6년에 신도학교인 신궁교원을 설립하여 신도학을 일반국민들에게 보급하면서 신대문자의 우월성과 존재성을 논하였고, 신대문자가 조선에 들어가 중인, 하인들이 사용하는 조선언문이 되었다고 하였다.

명치정부가 들어서자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전통적 니혼문화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명치정부의 초대 문교대신이었고, 니혼 근대교육에 많은 공헌을 남긴 '모리 아리노리'는 니혼인의 두뇌를 개발하기위해서는 니혼의 남자들이 외국여자와 결혼해야 하며, 서구의 과학기술 종교 등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니혼어 같은 빈약하고 불확실한 전달수단은 버리고 브릿튼어를 국어로 채택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서구 추종자들의 니혼어 폐지주장 대해, '히라이와 노리야스'같은 국수주의자들은 신대문자의 우수성을 강조하고,니혼어를 버리고 브릿튼어를 쓸 바에는 신대문자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대문자는 전쟁 이전까지는 존왕사상 아래 긍정되어 왔다. 또한 패전 후인 1949년에 와서도 '고쿄 기요히코'는 「옛것계승연구소」를 설립하고 니혼 신학연맹상임이사로 있으면서 신대문자를 후세들에게 지도하였고 「니혼의 신대문자, 고대글자에 대한 이해」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패전 후에는 국어학회, 국문학회, 니혼학회 등의 니혼 국어학자들은 여러 자료들을 들어 신대문자를 거세게 부정하였고,그 허구성을 입증해 왔다.  

우리 한글에 많은 공헌을 한 '김윤경'도「조선문학 및 어학사」를 통해「니혼에서 2,3백년 전에 신도교와 국학자중 애국심을 가진 몇 사람들이 니혼의 고대에 글자가 없었던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서로 모의하여 조선문자를 베껴서, 그 글자를 돌에 새기고, 그것을 산중에 묻어둔 뒤에,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그리로 놀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그것을 파내어 신대문자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훈민정음은 그 신대문자가 조선에 전해진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라고 일제식민지 치하에서도 신대문자를 부정해왔다.

한편, 한국학자들 가운데서도 고대 한글론을 주장하면서 니혼 신대문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세계 평화교수협의회에서 출판하는「광장」제125(1984.1월호)를 보면 그무렵 어메리커ㆍ베일러ㆍ대학 명예교수로서 한국사상사를 전공하는 '송수호씨는「한글은 세종 이전에도 있었다」라는 제목에서 태백일사에 나오는고대 한글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학계에 파문이 일었다.

'송호수'씨는 니혼의 신대문자인 아히루(阿比留) 문자, 인도의 구자라트문자가 가림다문자와 비슷한 것은 서로 같은 가닥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고대 문화의 흐름을 볼 때 아히루문자는 고대한글인 가림다문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송호수씨는 또 「단군제3세 가륵임금때에 만들어진 가림다문을 한글의기원으로 보지않으면, 니혼에서의 친자관계설 (니혼의 신대문자를 베껴서 한글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배격할 통로가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음달에는 이관수씨(홍익대 교수)가 즉각 반박 기고를 했다.
(광장126호 2월호) '이관수'씨는 「우리들은 세종 때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는 것을 정설로 믿고있으며, 굳건한 증거를 가지고있다. 종래 정설을 부정할 때는 그 설의 부당함을 검증하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하고 뒷받침되는 증거를 내세워야 한다. 단군시대 원시한글이 있었다고 내세우는 환단고기 속에「단군세기」나 「신대문자」의 자료들이 종래의 정설을 뒤엎을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논했다. 그는 송호수씨가 주장하는 가림다문은그 자형과 그런 글자가 있었다는 기사만 있을 뿐이며, 단군시대부터~ 고려초까지 가림다문 또는 그 비슷한 글자로 엮은 글뭉치가 단 한 조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그리고 가림다문이 실린 책인 태백일사 등이 출처를 고증할 수 없는 야사라고 못박았다. 특히 니혼의 아히루문자는 니혼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가설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관수'씨는 「단군3세 때에 한글이 있었다」 「니혼 고대에 신대문자가 있었다」「니혼 신대문자와 한글은 친자관계라는 등등의 일련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역사관과 언어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대를 긍정하는 사회에서 생성된 주장은 현대언어 철학으로서는 본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언어관 이다」라고 반론하였다.


3. 결론

송호수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니혼의 신대문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군시대 있었다는 가람다문자가 니혼에 들어가서 신대문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단군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고대 가람다문자의 존재를 니혼의 신대문자에서 찾을려고 하는 것이다. 반면, 니혼에서 신대문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신대문자가 천조대신이 강림할 때부터 있었던 니혼고유의 글자이며 한글은 이것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대문자를 인정한다는 점에선 같지만, 자신들이 먼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신대문자는 한국/니혼의 학회에서 모두 부정되고 있다. 특히 니혼 국어국문학회에서도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훈민정음 즉, 한글을 니혼 국학학자들이 조작하고 짜집기하여 전쟁 이전까지 인정해왔다고 자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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